파리에서 예정했던 2 년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곳에서 부친 책 스무상자와 살림 열 여섯 상자도 어제 부로 빠짐없이 한국에 도착했다.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새파랗게 질려 서류를 쓰던 그 날부터 파리 경시청 문밖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신발을 열 여덟번 내뱉던 어느 날을 지나 길게 늘어선 보딩 라인을 외면한 채 드골에서 보낸 반나절에 이르기까지, 늘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닌데도 미웠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 지난 사랑은 그렇게 아둔하고 맹목적이었다.
나는 파리에게 권력도, 지혜도, 지상 최고의 미인도 약속할 수 없었으나 그가 가진 황금사과를 끝없이 갈망했던 탐욕스러운 이방인이었다. 지칠 줄 몰랐던 젊은 열정의 댓가로 나는 황금보다 아름답고 꿀보다 농밀한 기억을 얻었다. 내가 파리의 품에 안겨 홀로 보낸 두 해는 지상의 다른 그 누구도 모르는, 나만이 알고 기억하는 시간들이다.
욕심 사나운 나는 그 지난 시간을 기억에 묻지 못하고 오만가지 잡동사니에 불어넣어 서른 여섯개의 상자와 세 개의 여행가방에 봉해 돌아왔다. 오래 비워두었음에도, 내 자리는 바로 어제까지도 엉덩이를 붙였던 것처럼 따뜻하고, 내 집은 내 빈틈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제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담아온 배움과 행복을 기쁘게 나눌 때라고 믿는다.
그 동안 애정과 우정으로 나를 생각하고 기다려 준 오랜 벗들에게 감사한다. 더불어 혼자 무엇이든 해낼수 있다 자만하는 독선을 내버리지 않고 외로운 시간에는 따뜻한 대화를, 곤경 앞에서는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파리의 친구들에게 진실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Le jugement de Paris, Rubens, Nationa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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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나두 보고싶엉. 지금 인사다닐데도 많고 만날 사람들도 너무 많은데 하나도 못 만나고 집에 붙어있어.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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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잘 지냈나. 그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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