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인데도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신유희 역


오랜만에 읽는 에쿠니 가오리였다. 매 년 한 권에서 두 권 정도 번역되는데, 귀국해보니 신간 두 권이 밀려있었다. 넉넉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열 여덟 무렵부터 시작해 10 년 넘게 에쿠니를 읽어왔다. 알게 모르게 내 생활과 취향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솔직히 도스토예프스키나 괴테에 매혹되어 십 년을 읽었더라면 나는 좀 더 괜찮은 젊은이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지나고 보니 10년이다. 그리고 나는 가볍고 감성적이고 미시적인 일상에 일희일비하는 그저 그런 이십 대였다.  

이제야 2000년 대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에쿠니와 일본 독자들이 생각하는 에쿠니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아동문학에 천착해온 작가라는 점을 나는 그저 작가 정보의 일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한 낮인데도 어두운 방'을 읽은 후 책장에 꽂힌 에쿠니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내가 간과해 왔을 뿐, 아동문학과 에쿠니가 가지는 접점이 그녀의 작업 전반에 있어 주요한 일면이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쿠니는 사실 에세이이고, 그 다음은 등장 인물들의 내면이야 어떠하든 어른들의 일상을 다룬 소설이다. 시나 아동 문학 작품들은 그 외의 범주에 들어가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입맛이 남다를 것이 없는지, 그런 계통의 작품들은 국내에 번역되는 경우도 드물다. 예를 들어 딱히 어린이를 위한 작품은 아니지만 아동문학적인 색채를 띈 작품 중 하나인 '나의 작은 새' 같은 경우, 다른 소설이나 에세이들에 비해 자주 꺼내보지 않는 편이다.  

'한 낮인데도 어두운 방'은 굳이 분류하자면 '나의 작은 새'와 같은 군에 속할텐데, 아동 문학의 어조로 어른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러나 에쿠니가 그리는 이야기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그녀의 심플하고 세련된 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기기는 어려운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은 고급 양과자점의 구움과자들 같다. 심플한 재료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성과 일정한 노련함을 들여 구워낸 과자들. 달걀과 버터, 밀가루와 설탕에 기대할수 있는 맛을 낼 뿐이지만 얼마간에 한 번 씩 궁금해 질 때면 생각이 나는 것이다.

 
2013/10/18 15:10 2013/10/18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