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에 해당되는 글 2건

  1. Tchaïkovski, Prokofiev (2) 2012/01/11
  2. La Cenerentola (2) 2011/12/06
Tchaïkovski, Prokofiev
Vendredi 06 Janvier à 20H00 Salle Pleyel /Paris
PROGRAMME
Piotr Ilyitch Tchaikovski 
: Concerto pour piano et orchestre n°1
Serge Prokofiev
: Cendrillon (extraits)

Interprète
Mikhail Rudy, piano
Alexander Vedernikov, direction


'나는 여기서도 자 봤다' 같은 주제로 리스트를 만든다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지난 금요일의 음악회를 꼭 넣고 싶다.

지난 금요일, 나는 수면 부족과 시험 망침으로 매우 피곤하고 지쳐있었는데 저녁에는 학기 초에 예매해둔 음악회가 있었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갈까 말까. 프로그램이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예프라는 것 말고는 교향곡인지 협주곡인지, 누가 나오는지 나와서 뭘 연주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티켓 끊어놓고 늘 이렇게 무성의한 건 아니다. 여튼 마구 끊을 때는 언제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빼먹느냐는 마음 속 무서운 언니의 힐난에 침대 속에서 늘어진 몸을 일으켜 플레이옐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홀에 사람이 굉장히 많은 건, 평소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내가 좀 늦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싼 티켓을 산 나는 지난번에 앉았던, 맨 꼭대기 맨 뒷자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자리보다도 훨씬 위의 지붕 아래 난간과 의자 사이에 쳐박혔고 내 앞으로도 뒤로도 사람들이 꼬깃꼬깃 다리를 접고 앉아 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멍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오늘 좀 이상하네.' 그리고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단 1초만에 알았다. 아. '빰빰빰빰'이로구나. 클래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텔레비전 보급률이 50%를 넘는 나라의 국민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그 차이코프스키'.

안심했다. 아, 다행이다. 적어도 졸지는 않겠구나. 아는 곡을 들으며 자는 일은 없다. 나는 확신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간중간 눈을 감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왜 저 아저씨는 피아노를 저렇게 대충치나 원래 저런 스타일인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뮤직France Musique 이 재방송해준 공연실황 녹음을 들으니 내 기억과는 전혀 달랐다. 잠에 취한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러한 집중력 극 감퇴의 상황에서도 피아노를 그냥 쓰다듬는것 같은데 피아노가 노래하는 듯 한 소리를 내는 루디Rudy 아저씨의 연주는 인상적이었다. 내가 사족을 못쓰는 '노련미'는 기본으로 탑재하셨고 내가 상상하는 러시아의 서정 - 잘 모르지만, 차이코프스키만을 생각한다면,- 이 반짝거리는 낭만적인 연주였다. 확실히 젊은 연주자들이 또박또박 치는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확하면서도 더 많은 감흥을 이끌어내는 그런 소리는 진부한 말이지만 연륜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런 루디 아저씨의 연주에 감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무려 1악장이 끝나고 한 두 사람이 아닌 청중 전체의 박수가 터져나와 룰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콘체르토가 끝나고 인터미션이 있었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집에 갈까 말까. 차이코프스키를 듣는동안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프로코피에프는 보나마나 숙면이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이나 좀 읽어 볼 것이지. 나는 이렇게 성급하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었으니 앞으로는 난간, 좌우로는 고상한 할아버지 할머니들 틈바구니에 낀 그 날 따라 아무도 쉬는 시간에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누군가 일어났다면 나도 일어나 빠져나갔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콕 쑤셔 박힌채로 프로코피에프님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프로코피예프였다. 프로코피에프가 곡을 쓴 발레 신데렐라 가운데 여러 곡을 추려 연주해주었는데, 동생의 목소리를 빌어 '우와 대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앞 공연 때부터 라디오 프랑스 팀파니 오빠한테 반해있었는데, 거기다 못보던 귀여운 오빠들이 주르륵 나와 탬버린을 통통, 트라이앵글을 칭칭, 심벌즈를 촹촹, 북을 둥둥 쳐주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야말로 '짱 재밌는' 소리들이 가득하면서도 역시 '러시아의 서정(...)'이 반짝거리는 멋진 곡이었다.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를 보고 나서 신데렐라는 봤으니까 이제 됐어, 라며 올 시즌에 걸렸었던 발레 신데렐라를 예매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했고 CD를 사리라 다짐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데 한 마담이 라디오 프랑스 스티커가 붙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멘 채 씩씩하고 빠른 걸음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훅 반했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고 나면 연주가 끝나자마자 빛의 속도로 악기와 가방을 챙겨서 청중들 사이를 슥슥 지나 퇴근하는 단원들을 보게 되는데, 나는 그 모습이 정말 좋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태도에 생활미랄까, 직업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이 느껴져 멋지다고 생각한다. 가끔 하는 생각인데, 만약 내가 다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규칙적으로 연습하고 규칙적으로 공연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다. 물론 적지 않은 고충이 따르는 직업이지만, 역시 멋있다.



2012/01/11 04:38 2012/01/11 04:38

La Cenerentola

from Carnet de spectacle 2011/12/06 10:07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 체네렌톨라 / 로시니
La Cenerentola / Rossini
le 1 Dec 2011
Opera Garnier


파리에 오자마자 오페라 나시오날 Opera National 홈페이지를 주구장창 드나들었는데도 생각보다 오페라나 발레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도 훨씬 많고 티켓 가격대도 다양했지만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걸려있는 작품들은 이미 티켓이 없고 앞으로 걸릴 작품들은 예약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놓친 발레 라 수르스 La Source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그나마 인터넷 예매에서도 번호표 나눠주고 줄서는 식인 예약 시스템 덕에 빈약한 내 인터넷 라인으로도 예매는 가능했지만, 예매시간에 수업듣고 나왔더니 이미 인터넷 티켓은 전부 동이 난 상태. 절망해 있던 차에 극장 매표는 다음날부터라는 정보를 뒤늦게 접하고 다음다음날 오페라 가르니에로 쫓아갔다. 그리고 파리 마담들이랑 착실한 청년들 사이에 끼어 삼십분쯤 줄을 서서 표를 샀다. 야호!

가르니에는 오래된 극장이라 밤에 조명 켜놓은 외관만도 환상적이지만, 내부도 환상적이다. 나는 유럽의 건축물이나 예술품에 좀 둔한 편인데도 시공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게다가 또 한 번 분위기를 비트는 샤갈의 천장화. 타임머신, 뫼비우스의 띠, 시대착오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마치 어느 지점에서 시공이 뒤틀린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극장이었다. 솔직히 음향은 새로 지어진 공연장들에 비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분위기는 경험해볼만 하다.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는 로시니의 작품인데, 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버전만 아는 상태였다. 메트로폴리탄은 뭐랄까, 마치 디즈니 신데렐라를 연상시는 연출을 보여주었는데, 그래서 이번 라 체네렌톨라는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의상이나 무대 모두 완연한 프랑스풍으로, 미국버전과는 아주 달랐다. 똑같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와 미국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두권의 그림책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미국풍과 프랑스풍은 이렇게 다르구나, 그 다름이 새삼스러웠다.
 
청중에게 쉽고 친숙한 오페라들은 많지만, 가수에게 쉬운 오페라는 아마도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스운 연기까지 해가며 그 어려운 곡들을 너무 쉽게 소화하는 가수들을 보며 그 노련함에, 그 노련미에 감탄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아름다움이 있지만 나는 '노련미'에 아주아주 약하다. 말그대로 훅, 하는 순간에 반한다. 너무너무 어려운 곡을 아주 편안한 얼굴로 심지어 웃어가며 연주하는 연주자interpreter나, 그냥 듣기도 벅찬 강연을 휘파람불듯 다른 언어로 따라가는 인터프리터 앞을 나는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오랜만에 오페라를 봐서 그랬는지, 인간의 번뇌대신 마음씨 착한 아가씨가 시집도 잘가는 좋은게 좋은 이야기 앞이라서 였는지, 그날은 오페라 자체보다도 그런 부분이 더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인터미션 내내 좁은 발코니 박스에 그냥 앉아있기 답답해 홀에 나갔다가 샴페인을 한잔 마셨다. 샤를 에이지엑Charles Heisieck 매그넘을 보는 순간 너무너무 목이 말랐다. 런던 로열 오페라는 아예 티켓 예약때 샴페인 예약을 함께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서비스가 참 좋다. 스놉이라 비난해도 좋다. 나는 오페라좌의 샴페인은 빵 위의 버터, 하얀 쇼트케이크 위의 딸기라고 생각한다. 황금 빛으로 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서 마시는 샴페인 만큼 아름다운 감흥을 줄 수 있는 건, 발코니에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트 차림의 연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2011/12/06 10:07 2011/12/06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