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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황혼
Le crépuscule des dieux (Gotterdammerung)
WAGNER
Paris Opéra Bastille
(le 3 juin 2013)


바그너 링 사이클 마지막 장을 보고 왔다. 그 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작년 말 오페라 네 편을 예매하며 느꼈던 막연함은 분명하고 개인적인 감상으로 남았다. 지난 2월부터 한 달에 한 편 꼴로 공연 일정을 따라가는 동안 흥미를 잃기도 하고, 졸기도 하고, 객석에 앉은 채 집에 가고 싶어 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이전에도 썼지만 나는 바그네리안도 아니고, 오페라를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링 사이클을 선택한 데는 내 허영 섞인 호기심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바그너와 그의 음악을 둘러싼 수많은 담화 속 에서 나는 내가 모르는 그의 음악을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일단 경험하고 싶었다. 공연을 올리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은 프로그램인 탓에 시기도 맞아줘야 하는데, 내 프랑스 체류와 파리 오페라의 일정이 맞았다. 연이라고 생각했다.

 

링 사이클을 보고 있노라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지인들은 내 호기와 인내심을 칭찬해주었다. 앞서 말했듯 겨우 자리만 지킨 순간도 없지는 않았지만 ‘니벨룽겐의 반지는 단순히 러닝 타임만으로 청중을 압도하고 버티기만을 요구하는 작품은 아니다. 작품 자체는 오히려, 청중이 원하는 청각적 즐거움을 끊임없이 선사한다. 그것은 때로 여느 오페라에서 듣기 힘든 가수의 힘찬 노래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 귓전에 걸리는 익숙한 모티브이기도 하고, ‘발퀴레의 비행과 같은 말 그대로 선동적인 선율이기도 하다. 일례로 청중이 원하는 것을 쉽사리 내주지 않는 현대음악의 괴로움 물론 그 안에는 다른 즐거움이 깃들어 있지만 - 을 생각하면, 바그너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에게 클래식한 의미에서 듣는 기쁨을 선사한다.

 

무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미니멀했다. ‘라인의 황금만큼 실망스럽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파리 오페라의 연출은 크게 만족스럽다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현대 음악이 그렇듯, 관객이 원하는 것을 부러 주지 않는 것이 현대 예술이 지닌 한가지 성향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2013년 파리의 링 사이클은 그 연출 만큼은 매우 현대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지막 신들의 멸망 장면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대에 설치한 스크린위에 FPS(First-person shooter; 1인칭 슈팅 게임) 게임의 한 장면처럼 신들을 총으로 쏘아 쓰러트리는 영상을 띄웠는데, 정말 뜬금없기로 이 지구상에 따라갈 자가 없는 연출이었다. 오페라신에 FPS를 못쓸 이유는 없다. 문제는 스크린에 영사된 영상이 이해할수 없을정도로 조잡해 이전 네시간동안 유지해온 일종의 미니멀한 고급스러움을 다 마신 콜라캔처럼 한방에 찌그러트려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객석의 칠할은 중년 이상, 절반은 백발의 노신사,부인들이 채우고 있었는데 그 레인보우식스도 울고 갈 총질 앞에 그분들의 당혹은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진정 파리 오페라가 원하는 것은 아방가르드였던가. 한숨이 나왔다.

  

여하튼 다섯 달에 걸쳐 네 번을 만나는 동안 음악이 귀에 붙어 따라가기 수월해진 덕에 네시간 십오분의 러닝타임과 한시간 반의 인터미션은 전에없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내 반응에 반가움과 기쁨을 느꼈다. 당연하다 못해 진부한 이야기지만, 음악도 영화도 그림도 그리고 음식도, 그 어떤 것이건 일단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안목이다. 안목이란 단순히 가장 좋은 것, 가장 고급스러운 것을 알아보는 눈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각각의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그 대상에 대해 개별적인 견해를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안목이다. 보는 눈이 있으면 자연스레 본인의 기준에 따른 줄세우기도 가능할것이다. 안목이 귀한 것은 경험치를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눈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지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순수하게 본인을 즐겁게 하는 아카이브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과정의 소실점은 결국 나를 아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덧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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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8 23:55 2013/06/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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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Siegfried
2013 Opera Bastille

오후 여섯시에 바스티유에 들어가 열 한시를 훌쩍 넘겨 나오는 프로그램은 역시 만만치 않다. '발퀴레'에 비해서 음악이 세지 않고, 스토리면에서도 드라마틱한 요소가 좀 덜하기 때문인지, 공연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굉장히 지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눈과 귀를 열어놓고 정신줄은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시간 오십오 분. 네시간에 달하는 공연을 내내 집중해서 본 다는건 평소에도 남다른 산만함을 자랑하는 내게 애시당초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게다가 앞서 두 번의 공연에서, 중간중간 찾아오는 좋은 대목을 더 맑은 정신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졸리면 졸고, 자막을 읽기 싫으면 무슨 얘긴지 모르고 넘어가는게 낫더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졸고, 적당히 지루해하는가 하면, 때로는 눈을 크게 뜨고 때로는 웃어가며 니벨룽의 반지 제 3 장, '지크프리드'를 봤다.

가장 좋았던 것은 무대, 센scène이었다. 1, 2, 3 막이 모두 마음에 들기는 처음이었다. 이번에 느낀 건데, 나는 컬러풀하거나 세부적인 무브먼트가 있는 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1막에서는 무대 위 식물들의 초록과 빨간 소품들의 대비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색감에서 어딘가 모르게 어린아이가 있는 집의 분위기를 느꼈다. 지크프리드를 데려다 키운 난쟁이 미메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함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막에서 대장간의 큰 환기팬이 실제로 돌아가며 무대위에 움직이는 그림자를 만든다거나, 인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꺼진다거나 하는 부분들에도 눈이 갔다. 왜 그런 데 반응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시절부터 인형의 집 주방 놀이의 오븐에 실제로 빨간 불이 들어온다거나 냉장고에 플라스틱 우유곽이 들어있다거나 하는 데 무척 감동하곤 했다.

이번에도 가수들의 노래에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지크프리드 역의 토르스텐 컬 Torsten Kerl은 그 긴 공연 내내 쉬질 않는데도 시종일관 힘차면서도 편안한 - 힘있는 후륜구동 독일명차의 안정적인 승차감을 떠올리게 하는 - 노래를 들려주었다. 게다가 두려움을 모르는 어린 지크프리드를 어찌나 그렇게 천진하게 연기하시는지. 지크프리드가 나무가지를 질질 끌며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그 귀여움에 웃음을 터뜨린 관객은 나 뿐이 아니었다. '발퀴레'에서부터 완벽한 브륀힐데로 눈길을 끌던 알윈 멜러Alwyn Mellor 는 이번에도 비범하고 아름다운 브륀힐데로 분했다. 사실 가수들에게 노래 잘한다는 이야기는 우스울수 있지만, 모든 오페라 가수가 공연장을 나올 때, 노래가 정말 좋았다는 생각에 브로셔를 한번 더 찾아보게 하지는 않는다. 이 날의 가수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내용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공연을 다 보고서 불현듯 떠오른 농담이 있었다. "네 남자친구 태어났대. 가봐." '발퀴레' 에서 지크프리드의 부모인 지그문트와 지클린데를 지켜주고 그 벌로 영원의 잠에 빠졌던 브륀힐데는 (우리식으로는 조카 뻘인) 지크프리드의 키스로 긴 잠에서 깨어나 그와 사랑에 빠진다. 돌고 도는 인간사, 이러한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신화의 세계는 오늘 날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잰 걸음으로 바스티유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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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00:15 2013/04/0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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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L'Anneau de Nibelungen - La Walkyrie /R. Wagner
2013 Opera Bastille




'라인의 황금'을 보고 난 감상이 실망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인지, 이어지는 '발퀴레'에 대한 설렘은 반감에 반감을 거듭, 급기야 티켓을 끊고 나면 공연 전까지 의식적으로 몇 번은 하는 '귀에 붙이기(전체 감상)'는 커녕 1막만 겨우 찾아 듣고 마는 무성의로 한 달을 보냈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 일정이 잡히면 열심히 떼창 준비를 하며 복습을 하듯, 장르를 불문하고 공연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준비라는 게 필요하다. 게다가 나는 바그네리안을 자청할 수 있는 수준도 못 되기 때문에 그런 밑준비 없이 가서는 못 따라가고 잠들게 뻔 했는데도 영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바그너의 음악극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통상 쉽지 않다, 입문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마주하게 된다. 나도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일단 오페라 팬이라면 상대적으로 익숙할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 (레치타티보 + 아리아)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극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강 약 중강 약 하는 식으로 조절하게 되는 집중의 리듬 타기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게다가 길기는 또 오지게 길어서, '라인의 황금'은 중간 휴식없이 두시간 반을 내리 달리고, '발키리'는 순 공연 시간만 세 시간 사십 오 분이다. 체력 좋은 독일 작곡가 답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바그너에 일단 덤비고 보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리아나 레치타티보가 없는 대신, 그의 음악극에는 특정 인물이나 장면을 상징하는 유도동기가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 배경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음악적 장치가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특정 선율을 기억하고 있으면 극을 따라가는데 도움이 되고, 특히 '발퀴레'는 많은 영화 감독, 음악 감독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던지라 직간접적인 매체 노출이 많았다. 의외로 '들으면 아는' 대목이 많은 작품인 것이다.
 
때문에 힘들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다. 네시간에 달하는 공연 도중에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졸리기도 했지만 나의 무성의함에 비하면 무척 친절한 공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전편에서 느낀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연출이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괜찮았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다. 더 휘황찬란한 눈요기를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직 전 작품을 다 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운을 떼기는 조심스럽지만, 내가 본 링사이클 절반과 다른 작품까지 통틀어 느낀 바, 대부분의 경우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의 연출은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이지만 '화려하게, 더 화려하게 spectacular! spectacular!'를 지향하는 쪽은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파리의 오페라 신은 그 이미지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도, 사치스럽지도 않다. 유럽 경기 침체가 당장은 문제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예산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문화계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는 몇 안되는 국가들 가운데 형님 격이고 어느 정도 장사도 잘 하는 편이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각종 매체를 통해 자주 조명하는 것 처럼 문화산업과 수익성을 기반으로 한 모델이 아니다. 현대에 지어진 오페라 바스티유의 모토가 오페라의 대중화였듯 파리의 문화 예술계는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최상의 혜택'이 아닌 '더 많은 예술애호가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향'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이곳에도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과 그들의 경제력 간의 끊을수 없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허나 앞서 말한 프랑스 예술계의 모토는 더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을 끌어 안는 원동력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한풀만 벗겨보면, 프랑스 문화계 종사자들은 언제나 예산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성공에 성공을 거둔 호퍼의 그랑팔레 전시의 이면에는 예산확보를 위한 대관사업과 작품 대여료 인하를 위한 눈물겨운 네고가 있었다. 매 두 달에 한번 쯤 오페라 나시오날에서는 업커밍 공연들의 할인 혜택을 적은 우편물을 보내온다. 순수한 소비자인 나는 모른다. 나는 언제나 돈을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내 사치스러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예술소비와 더, 더, 더를 외치는 일은 관둘 때가 되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한다고 믿는 예술과, 그 예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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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2 21:32 2013/03/1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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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Das Rheingold / L'Or du Rhin
2013 Opera Bastille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
라인의 황금
2013 오페라 바스티유


작년 가을부터 예매해두고 기다렸던 파리 바그너 링 사이클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라인의 황금'.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시즌이라 세계 각지에서 야심찬 프로젝트들이 예고된 바 있다. 이미 작년 하반기에 개막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링 사이클이 지금까지 공연중이고 릴레이 하듯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그 뒤를 이어 올 상반기 반지 시리즈의 막을 올렸다.

작년 가을, 한참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마침 뉴욕에 들러 메트의 '신들의 황혼'을 구경했더랬다. 반지 시리즈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긴 했지만 일정상 전 시리즈를 다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있는대로 끊은 티켓이었다. 영화 뺨치는 무대장치와 과감한 스케일로 유명한 메트의 링사이클인지라 한 작품이라도 직접 본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렇지만 바그너조차도 미국적이랄까, 영화의 영향인걸까. 미제 인터프리테이션이니 미국냄새가 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처음에는 눈을 확 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반지의 제왕이나 (아주 좋아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스타워즈 같은 판타지, 혹은 사이언스 픽션 필름의 냄새. '마농'을 보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메트의 기획력이나 연출력은 객관적으로 훌륭하지만, 그 스타일이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느냐면 아니랄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종일관 씩씩하게 노래하는 브룬힐데에게서는 매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파리의 반지시리즈를.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최고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지만, 조건상 자주 드나들며 크고 작은 재미를 느낄 기회가 많았다. 각 작품과 작곡가의 정통성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혁신을 이어가는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단들의 연출에 비하면 파리 오페라는 장르 자체의 클래식함은 유지하되 더 과감하고 독창적인 신을 보여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이 오리지널리티로, 아방가르드로, 세련된 미니멀리즘으로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저 싫기도 했다.

하지만 두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가 실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가수들은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고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기대했던 것 보다 심심했지만 나쁜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것은 무대 연출이었다. 사람마다 제각기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무대는 딱히 모던하다고도 독창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이 애매했고 몇몇 의상은 흉하다 싶은 수준이었다. 사람마다 '라인의 황금'에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오페라는 시청각예술이다. 시각적인 감흥을 줄 수 없다면 반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쩐지 나는 파리 오페라의 '라인의 황금'이 무성의하다고 여겨졌다.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반지' 연작은 오페라 네 편이 함께 가는 대작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주로 네 작품을 순차적으로 모두 관람하며 - 오페라 네 편의 티켓을 함께 구입한다는 뜻이다. -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은 만큼 음악적 애정 이상으로 지적인 관심을 쏟는다. 때문에 세계 유수의 오페라 하우스들이 반지 시리즈의 연출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 것이다. 링 사이클은 무조건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시켜야 할 관객의 기대가 큰 만큼 어떤 스타일이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완성도가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나의 실망은 그런 측면에서 가졌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던 탓이었다.

아마도 그날의 실망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것 같다. 이날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박수소리에서는 으레 섞여있기 마련인 흥분섞인 탄성이나 찬사의 목소리가 거의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02/10 03:02 2013/02/10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