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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도원 / 더 플라자

 

사촌 동생에게 축하할 일이 생겨 어디서 맛있는 밥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 플라자 호텔의 중식당 '도원'에 다녀왔다. 최근 주요 일간지를 비롯해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차였다. 

코스나 잘 한다는 샥스핀, 좋아하는 가지 요리도 궁금했지만 첫 방문에 나름의 졸업이랄까, 책걸이 축하 점심이었기 때문에 일품으로 고전적이기 그지없는 탕수육과 자장면, 그리고 호기심에 지마장면을 주문했다. 한화 호텔앤리조트 외식사업부에서 운영하는 티원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맛만 있으면 조만간 다시 와서 다 먹어 보고 말겠다는 각오였다.

탕수육 소스에 들어있는 생과일과 호텔 탕수육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바삭하고 가벼운 튀김옷의 첫 인상은 훌륭했다. 고기 한 입, 과일 한 조각 돌아가며 먹는 것도 별미였다. 다만 덜어 준 양을 다 먹어갈 때 즈음에는 소스의 단 맛이 과하다는 느낌에 그만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웠던 건 자장면이었는데 타이밍의 문제였을까, 받고 비비는데 면이 뭉치기 시작하더니 소스에 윤기가 사라져 금새 푸석푸석한 자장면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아마도 공들여 만들었을 소스마저 순식간에 매력을 잃고 말았다. 직원들이 밖을 오가며 분명히 우리의 식사 속도를 체크하는 것 같았는데 자장면이 그렇게 나온 건 아주 실망스러웠다. 

도원 실명제 메뉴에 들어있는 지마장면은 무척 매력있는 면요리였다. 차가운 비취면에 땅콩소스를 부어먹는데 차갑고 달콤하고 고소한 맛에 채 썬 파프리카와 관자가 깔끔하면서도 아쉬움 없는 맛을 냈다. 중식당에 가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자장면으로 식사를 하는, 나는야 자장러버지만 누군가 여기 뭐 특별한거 없나? 하고 묻는다면 권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족하며 남김없이 다 먹었다. 

디저트로는 망고 시미로가 나왔는데,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들이미는 것이 못마땅했다. 우리가 그렇게 밥을 늦게 먹나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받았다. 그런데 한 스푼 떠먹어보니 망고 주스 맛이 몹시 강해 잠자코 받은 것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생망고 갈아달라고는 못하지만 냉동 망고 과육을쓰거나 아니면 다른 디저트를 내 줄 것이지, 깡통 망고 주스를 연상시키는 기분 나쁜 뒷맛이 불쾌했다. 

호텔 식당 답게 깍듯하면서도 붙임성 있는 서비스는 좋았다. 직원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선을 넘지않는 상냥함은 좋은 인상을 주었다. 문제는 서빙 타이밍인데, 이건 주방과 홀 간에 엄격하게 손발을 맞춰줘야 하는 부분이다. 직원들의 중간 휴식을 잘라먹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먼저 나오는 음식과 나중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 서빙 타이밍은 고급식당을 자처한다면 강박증 수준으로 지켜야 한다. 마감이 가까워졌다고 살짝 살짝 먼저 준비해놓고 파트를 닫는 습관이 맨 마지막으로 그 품목을 받는 손님에게 대단한 실망을 안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턴 시절 나는 아뮤즈 부슈를 조합해 내놓는 일을 했는데 한번은 손님의 예약 시간에 맞춰 플레이트에 가장 먼저 깔리는 퓨레를 미리 깔아놓은 적이 있었다. 손님은 시간에 맞춰 들어왔지만 그걸 본 셰프는 내게 그 접시는 디쉬워셔로 보내고 새로 퓨레를 깔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퓨레가 마르니까.

도원의 자장면이 원래 내가 받은 자장면 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장 자체는 고소했고 재료를 다듬은 모양새도 일정하고 깔끔해 고급 중식당의 자장 다웠다. 문제는 그 모든 공을 날려버린, 가장 좋은 타이밍을 넘긴 후에 서브된 것이 분명한 면이었다. 

고급식당에 가는 것은 화려한 분위기에 나 이렇게 비싼거 먹으러 다녀요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정확한 테크닉으로 조리해 편안하게 서브해 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다이닝에 있어 중요시 되는 모든 기본 규칙들을 정확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고급 식당을 찾는다. 그리고 업장이 그런 기대와 믿음에 부응해 줄 때 시중 음식점의 두 세배 되는 식대가 아깝지 않은 것이다.

 

 

2014/08/27 18:10 2014/08/27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