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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월의 책읽기 - 두번째] 공부하는 책읽기 2008/04/02


학교는 일단 졸업했지만,
그리고 이제 더이상 '교양 수업'을 들을 일도 없겠지만,
공부는 계속한다.

세상에서 가장 싸고, 편하고, 만만한 선생님이 있다면 그건 책 일거다.

이번 달, 유익했던 두 권.


1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드니 로베르, 베로니카 자라쇼비치의 촘스키 인터뷰.

노엄 촘스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 한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언어학 수업을 들으며 처음 그의 생성문법이론을 접했고
그때만 해도, 참 이 양반, 모르긴 몰라도 머리는 엄청 좋은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런 공부에 빠지게 된 걸까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주문했을때도
촘스키가 언어학과 인문학을 뛰어넘어, 시대의 아이콘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솔직히, 이 책이 촘스키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한 권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촘스키와의 밀도있는 인터뷰를 묶어 냈기 때문에
잡지 기사처럼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무척 편안했다.
게다가 필요한 배경지식도 그리 많지 않고, 잘 모르는 사건에는 주석이 달려있어
시사, 세계 정세, 사건에 대해 일자무식이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의 인터뷰어가 두 프랑스 언론인이라는 점이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었던 핵심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촘스키를 상대적으로 매우 늦게 받아들인 프랑스에서 온 언론인들이었기에
프랑스와, 그런 프랑스를 바라보는 촘스키의 견해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한 대목대목에서, 나는 은연중에 '미국'의 대안으로 '프랑스'를 바라보고 있었던
나의 견해 역시 상당히 편파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막연히 미국을 상당히 긍정적인 국가적 모델로 삼았던 적이 있었고
그 시기를 벗어나 그 모델을 프랑스와 몇몇 유럽 국가들로 옮겨 두었다.
그러나 자유와 연대와 관용을 부르짖는 프랑스의 지식사회와 그들이 이끄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고 맹목적인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나나, 나와 비슷한 '프랑스를 안다'고 말하는 이들은 정확하게 파악해두었다가
이 사회가 우리의 견해를 필요로 할 때 적어도 헛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는, 아니 유럽은 많은 참고자료를 안고 있을뿐, 결코 온전한 대안이 되어줄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말하기도 진부하지만,
제발 미국과, 대기업 좀 그만 좋아하자.


2

리바이어던
- 홉스 / 김용환

내가 이 책을 읽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거다.
나도 몰랐다.

영문학사 시간이었나, 거의 매시간 해당 텍스트를 읽고 쪽글을 내야 했는데
그 텍스트들 가운데 하나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이었다.
나는 텍스트를 요만큼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책을 사놓고도 스스로 이 책은 못 읽겠거니 하고 책장에 고이 꽂아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작년 여름에 '사놓고 안 읽은 책 읽기 하트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이 책도 고민고민 끝에 책장에 꽂아 넣었다.
다짐 같은건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무거웠을 뿐.
그런데 그 책장에서 이 책의 순서가 돌아와 뽑아 들었고,
읽기 시작하니 읽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책 자체가 리바이어던의 완역본이 아니라
-완역본은 절판상태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공부한다는 인간들을 한번 비꼬고 싶어진다. 훗-
홉스 전공 교수가 쓴, 정확히 말해 원문의 일부를 포함해 '리바이어던'에 관해 가르쳐주는 책이었기 때문에
완역본을 구들구들 끼고 읽는 것보다 훨씬 쉬웠던 탓이다.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의 이름인데,
이는 국가의 막강한 힘을 상징한다.
개인이 최소한- 예를 들면 목숨이 위험할 시의 정당방어 - 을 제외한 권리를 국가에 일임하고
개인들이 모여 국가를 형성하기에 국가 이상의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리바이어던의 토대이다.
국가에 관한 홉스의 견해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라기 보다는 '사상의 가치'를 보여주었기에 빛났다.

2000년대의 대학민국을 사는 내게 이 책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 왕국론이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며 성경을 부여잡고 부흥을 부르짖는 뭇 기독교인들에게
내가 울며 매달려서라도 좀 읽히고 싶은 심정이었다.

홉스의 견해 자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제발 당신들이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해 수백년전에 살았던 이 사람의 열에 하나 만큼이라도
머리를 써서 생각을 좀 해 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보며 여태까지 가장 답답해했던 것이,
어떤 문제가 발생해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했을때 한결같이 보여온 감정적인 태도와
무조건 '믿으면 바뀐다'라는 식의 결론이었다.

종교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성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좀 알아보고, 고민해보고, 그분을 진지하게 사유해보라는 얘기다.
진정 사랑하고, 그에게 생의 마지막을 맡길 것이라면서
초등학생의 연애질만도 못한 사랑을 그들의 신에게 바치는 모습이,
그리고 그런 '어린양'들을 이용해 일요일마다 '전국 노래자랑'만도 못한 '주님의 말씀'을 떠들어대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시뻘건 얼굴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 뿐이었을까.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살아가는 이나라, 이 사회안에서
정녕 우러러 볼 만한 기독교 문화가 꽃피기는 커녕
매일같이 그와 관련된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의 쓴소리를 듣는 것은
이미 '리바이어던'을 넘어섰을지도 모르는 막강한 힘인 '종교'가
그 어떤 심각한 고민도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따먹기만 하고 있는 사이에
교인들의 삶에 어떤 방향도 제시해주지 못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홉스는 날카롭더라도 정확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때문에
왕당파로부터도, 교회로부터도 따돌림과 비판을 당해야만했다던데,
오늘날의 교회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셈이라도 좀 해봤으면 싶다.
제발, 화부터 내지 말고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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