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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월의 책읽기 - 두번째] 일곱 권, 일곱 이야기 2008/05/02


일곱 권 중에 세권은 에세이에 가까운 비문학, 한 권은 시집, 세권은 소설이었다.
그래도 일곱권을 포스팅 한번으로 다 담기는 좀 지루하겠다 싶어
문학, 비문학으로 나눠 두번에 정리하기로 했다.

앞 포스팅에 이어, 두번째는 문학 :)


4

생일 - 장영희 글 /김점선 그림

4월에 정말 잘 어울리는 시집이었다.
이 책도 엄마가 선물받으셔서 내게까지 내려오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그림과 아름다운 시를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예쁜 책이다.

총 마흔 아홉편의 영시들을 묶어 펴냈는데, 존경하는 장영희교수님의 친절한 번역이 달려있어
본래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다 영시 읽기에 소질없는 나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들여다 보았다.

이 책은 매일 밤 잠들기 전, 하루 한편 씩 쓰지 않는 노트에 옮겨 적으며 읽었다.
물론 중간에 빼먹거나 집에 다녀오는 주말에는 밀리기도 했지만,
그럴 땐 또 몇 일 두편씩 적고 읽으면 되었다.

3월 3일부터 4월 20일까지 꼬박 일곱주 동안
에밀리 디킨슨이나 새러 티즈데일, 바이런이나 브라우닝들의
짤막하고도 따뜻한 감성을 품고 잠들 수 있어 행복했다.


5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알고 지내는 학교 선배가 어느 날 함께 식사를 하며
'난 정말 요즘 참을 수 없이 싫은 작가가 있어.' 라는 이야기를 하길래
'정이현이요?' 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내 입에서 너무나 쉽게 튀어나온 정답에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나는 사실 정이현이 싫지 않다.
하지만 벌써 내 주변의 세 사람이 정이현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을 놓고 내 귀에 못을 박았고
그러는 동안 나는 약간 그녀가 가여워졌다.
그리고 그 뿐, 달리 그녀의 책을 읽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웹서핑을 하다가 '달콤한 나의 도시'가 드라마화 된다는 기사를 읽고 호기심이 확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한참 후, 잘 다니는 집근처 북까페에 '달콤한 나의 도시'가 꽂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들를때마다 짬짬히 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재밌게 읽었다.

소설의 주된 배경이 마포구, 딱 보니 우리 동네라 신기했다.
솔직히 소설보다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한 편 보고난 느낌이었는데, 영화화하면 쪽박, 드라마라면 괜찮을 것 같다.
정이현은 오늘날 2,30대 여성의 '일반적인' 생활에 촛점을 맞추고 재미있는 글을 써내는데 재능이 있다.
그래서 좀 대중적, 통속적, 상업적인 색채를 띄는것도 분명하고, 때문에 가볍다, 쓰레기다 하는 소리도 종종
듣는것 같지만 그녀의 성실한 호흡과 경쾌한 감각은 전혀 나쁘지 않다.
사실 그래서 읽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김훈도 있고, 정이현도 있어야 하는 거니까.  


6

플라스틱 피플 - 파브리스 카로

이 책은 뮹뮹에게 강력 추천.*

예전에 스타벅스 서가에서 굴러다니는 걸 보고 관심을 두었다가, 헌책방에서 거의 새 책인걸 주워왔다.

프랑스의 젊은 감성, 색다른 상상력을 십분 느낄수 있었던 소설.
책 자체는 아주 쉽게 잘 읽히는 편인데 젊은 프랑스인들의 일상을 직접 보고 들은 적이 없다면
톡톡 튀는 감각을 갖춘 작품임에도 상당히 밋밋한 인상에 재미없는 소설로 찍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술술 책을 읽어 나가다가, 불현듯 번역자조차도 이미 프랑스적인 일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불어 단어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단순히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문제를 떠나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풍경이 대체 어떤 느낌인지를 전달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능력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혹은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독자의 문화권, 배경 지식에 달린 문제이기는 하다.
이미 대중들이 익숙하게 여기는 일본, 미국 문화상품들과 비교하면 그 외는 모두 제3세계나 마찬가지.
어쨌든, 프랑스인 친구와 교제해 본 일이 있다거나, 프랑스에 체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장면 장면에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정말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피귀렉이라는 극단적인 존재 집단은 이미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장례식에 찾아와 자리를 채워주고, 부모 앞에서 결혼할 연인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
작가 파브리스 카로에게 '한국에는 정말로 예식장 아르바이트라는게 있답니다'라는 e-mail을 쓴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아, 한국에서는 이미 피귀렉이 공개적으로 활동을 개시했군요, 제 작품이 뒷북을 친 꼴입니다' ?

이미 '연출'에 너무나 익숙한 이 현실이라는, 그리고 허구라는 리바이어던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는 모두 그 어떤 끝으로 치닿고 있는 걸까.

 
7

The house on Mango Street  - Sandra Cisneros

얇디 얇은 한 권.
코엑스에 들렀다가 반디에서 충동구매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책이 예뻤고, 쉽고, 짧아서.

읽으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생각났다.
어리고 애처로운, 그러나 스스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
읽는 동안 많이 웃고, 그 따뜻한 시선과 생각에 감동하기도 했다.

작가는 미국 태생으로 영어로도 쓰고 스페인어로도 쓰는 멋쟁이 바이링구얼 이모지만 작품은 확실히 남쪽이다.
꼭 커피같기도 하고, 초콜릿 같기도 한. 따뜻하고 씁쓸하고 달콤하고, 그리고 외로운 이 느낌은
남미사람들의 정서인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 Like water for chocolate)'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쨌든, 타고난 천성이랄까, 남미의 끝도 없이 타오르는 태양이 빚어낸 성품이랄까.
잿더미같은 인생조차도 긍정하게 만드는 그 곳 사람들의 심장은
그들과는 빚어짐 자체가 다른 내게 늘 매력적이다.

중남미 문학권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이들은 분명히 세계 문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영미문학이나, 아직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이 멀기만한
아시아 문학권이 내놓지 못하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거라고 믿는다.
그들이 그리는 여성의 연약함과 강함, 그 매혹적인 내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2008/05/02 14:09 2008/05/02 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