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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월의 책읽기] 폭풍 5월 2008/06/02


'T.S. Eliot 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지, 그건 나한테도 마찬가지야'
그녀는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웃었다.

내가 웃은 걸 무덤 속 엘리엇이 알고 벌떡 일어났나보다.
1일부터 31일까지 나의 지난 한 달은 공부든 일이든 전방위로다가 구석구석 끝내주게 잔인했고
그 잔인한 5월에 꼭 붙들린채, 나는 오로지 그 시간을 버텨내기위해 애를 썼다.

그러고 났더니 남은 건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일상.  진정, 5월 한 달간 한 게 없다.
운동도 꼬박 한 달동안 빼먹고 공부도 안했다.
더 기가막힌건 5월 한달내내 본 책이 고작 세 권이라는 사실.

어쨌든 월말이고 정리는 해야겠기에 하는 포스팅. 심히 부끄럽다.
어쩌자고 그렇게 막 살았단 말인가.


1

La petite bijou
- Patrick Modiano

작년 여름, 라호셸을 떠나던 무렵 민언니에게 얻은 책.
민언니가 좋아하기도 했고, 최근에 선생님께서도 뮈소와 함께 읽을 만 한 작가로 권하셔서 반가웠다.
모디아노도, 가발다도 편안해서 좋아한다.
불어로 읽는것도 힘든데 글까지 삐죽삐죽이면 참 못마땅하거든.
홀랑홀랑 넘어가는 번역본들을 두고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꽤 쉽게 읽혔다.  

예전에 이 책을 살짝 읽다 말았을땐 몰랐는데, 분위기가 참 좋은 작품이다.
사실 이런 과거에 쩔쩔매는 주인공, 이야기 모두 난 참 별로였는데 말이지.
'엄마 찾아 삼만리' 같은 골자는 둘째치고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과 걷는 거리의 이미지가 좋았다.
그래서 읽다보면 파리가 그리워진다. 특히 그 싫었던 샤틀레나 별 감흥 없었던 알레지아 같은 동네가.
요즘처럼 떠나고 싶은 때엔 읽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젊은 불문학도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한데,
읽어보면 왠지 젊은 사람들에게 잘 맞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본도 있다. '작은 보석' 이라고.
찾아본 적은 없지만 프랑스 소설에 관심있는 이라면 읽어볼만 하겠다.


2

Cooking for Mr. Latte.
-Amanda Hesser

서울시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을 모두 뒤져 찾아낸 한 권.
2004년 작이 올해 번역되어 해외주문을 넣어도 원서를 찾기가 좀 성가신 상태였지만
분명히 예전에 수입이 된 적이 있었던 책이라 뒤지면 분명히 걸려들거라고 믿었다.
 
커버에 붙어있는 스티커가 살짝 들린채로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용 자체는 대단할게 없지만 각 장의 에피소드들이 대체로 무척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게다가 귀여운 레시피들이 꼼꼼하게 정리되어있어 궁금할때면 쏙쏙 빼서 써먹을 수도 있다.
그래,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나 이런 책 진짜 좋아한다.
걸리기만 하면 무조건 다 산다고 보면 된다. 국내에서 못 구하는 경우, 해외주문도 서슴치 않는다.

사건이나 긴장관계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장 한장 조곤조곤 읽어가는 재미가 있고, 먹기 좋아하는 따뜻한 주변사람들과의 이야기와 더불어
음식에 감각이 없을 뿐, 지적이고 온화한 남자친구(!)와의 순조로운 러브스토리로 채워져있다.
막판 감동은 마지막장에 등장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즈의 자두시.
무척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고 이 소설에 참 잘 어울리는 축시라 읽고나서 혼자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졌었다.

한가지 팁.
작가가 프랑스에서 요리를 공부했는지 영문 텍스트임에도 불어 단어가 난무하는 편이다.
미국인이라면 오히려 친숙할지도 모르지만 불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는
그리 편안한 원서는 아닐 듯.

그래도 이 책에 관심이 있다면 대안은 번역서다.
올해 '미스터 라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나름대로 레시피 번역과 검수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공부한 사람에게 따로 맡기고 검수도 한 모양이니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고 할 수 있다.
번역서를 읽어보진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역서를 읽는 편이 두배는 편안할 것 같다.
 

3

미학 오디세이 2
- 진중권

이 책, 정말 질리도록 오래 붙잡고 있었다.
왜 읽느냐는 질문도 무지 여러번 받았다.
답은 그냥. 문학전공했다고 맨날 문학만 붙들고 있는것도 아니고,
의외로 주변에 미학이나 예술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런 편도 아니다.
어쩌다 그 유명한 미학 오디세이를 한 권 구해서, 그것도 평소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마그리트가 주제라
읽은 것 뿐이다. 다 읽고나니 1권에서 다루는 에셔가 훨씬 신기해져서 1권도 읽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어쨌든 본격적인 '서양미학'에 관한 책을 살짝 맛보고 난 소감은,
흥미롭기는 하나 역시 내 분야로 삼고 싶은 정도는 아니라는 것.
학교 다닐때 예술학 복수전공을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애초에 본능대로 영문학 하기를 잘했다는 결론이다.
남이 할 때 좋아보이는 걸로 됐다. 예술학이라 부르든 미학이라 이르든.

하지만 미학에 철학, 언어학과 문학이 함께 만나는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지금이야 학문들이 서로 미끄덩거리며 따로 놀고 있지만, 결국 서로 무엇하나 버릴 게 없더라는 이야기지.
말 많은 진중권교수지만, 그 실력과 내공은 인정하고 들어가야겠다.
한 학기 내내 봐도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교수'들을 여럿 보며 대학을 다닌 바,
이렇게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자신의 전공 분야를 말랑말랑하게 설명해내는 실력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2008/06/02 14:36 2008/06/02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