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에서 좌절스러운 달프 시험을 보고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애써 노력하며 몇 주 전부터 벼러온 서래마을로 직행하였다.
목적은 단 하나, 서래마을 빠리 크로와상.
원래 '빠리 바게뜨'나 '빠리 크로와상'이나 그 나물에 그 밥상으로 냉동 도우를 받아 매장에서 구워파는지라
발길 끊은지 벌써 몇년이 되가지만 단 한 군데 서래마을 빠리 크로와상은 예외다.
간혹 브랜드 이미징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베이커리만 찾는데,
사실 빵의 질을 따지면 동네 베이커리라도 제빵사, 제과 기능장 아저씨 아줌마가 손수 빵을 만드는
소박한 제과점 빵들이 훨씬 낫다는게 나의 빵론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냉동 도우는 영 찝찝한데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절대로 신선할 수는 없다.
동네마다 아파트 상가마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베이커리 체인점 때문에 동네 빵집이 죽어나는지라 손맛있는 제빵사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유명하지만, 서래마을 빠리 크로와상은 프랑스인 제빵사가 직접 빵을 만든다.
고로 매장 구석에 체인에서 들여온 몇가지 빵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날 만들어 그날 다 팔린다.
오후 늦게 가면 몇가지 빵이 없을 정도라니까 굉장한 거다.
(열두시쯤 갔는데 이미 바게뜨는 다 떨어져가더라.)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에서 먹던 올리브 빵이나 타르트들을 사먹을 수 있어서 좋고,
가격도 '까페 빠리 크로와상' 수준으로 보통 빵들보다는 살짝 비싸지만 빵맛이 배로 실해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게다가 오늘은 프랑스에서 돌아와서 처음으로 간 서래마을이었고 (이유1)
달프를 망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던데다 (이유2)
도서관에서 아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동생 몫까지 산다는 명목으로 (이유3)
빵을 두 봉지(!)나 가득가득 샀다.
늘 바쁘신 동생님 몫으로는 감자 고로케, 카레 깡빤뉴, 햄 브레드, 밤 타르트를,
욕심사나운 나는 올리브 푸갸스, 프람보아즈 타르트, 올리브 빵, 밀크 치즈 머핀, 시나몬 번을 골랐다.
여기서 우리 남매의 식성을 제대로 비교할 수 있는데 나는 담백하거나 달거나 치즈가 들어간 빵을 좋아하고 내 동생은 느끼하거나 짭짤하거나 치즈가 없는(!) 빵을 먹는다. 언젠가 엄마가 '새깽이(;)라고 둘 있는 것들이 입맛이 정반대라 맞추기 정말 힘들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아무튼 남들 보기에 근 4~5일 분의 간식이 든 비닐봉투로 무장하고 - 나는 하루 이틀이면 다 먹지만; -
2층으로 올라가서 커피를 마시려는데, 또 여기서 브런치 메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문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사천원짜리 커피 앞에서 팔천원, 심지어는 이동통신사 할인혜택으로 칠천원 선이면 먹을 수 있는 브런치 세트를 그냥 지나치기는 힘들다! 거기다 커피가 포함이 되는데!
어쨌든, 결국
파프리카를 많이 넣은 오믈렛과 달달한 콘 수프, 올리브유에 소금으로만 드레싱을 한 샐러드에 소프트 베이글 - 이라지만 이건 도우를 삶긴 삶은건지 그냥 뺑드미 (pain de mie)수준의 그냥 흰빵 - 반쪽, 커피 한잔이 나오는 브런치 세트로 점심을 먹었다. 물론 기다리는 동안 빵 봉투를 그냥 두지 못하고 올리브 푸갸스를 꺼내서 1/4만 남기고 다 뜯어먹는 만행도 저질렀다.
함께 간 뮹언니는 니스풍 야채 스튜를 시켰는데, 작은 스튜 그릇에 수란을 올린것이 너무너무 귀엽고 맛도 좋았다. 설탕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언니가 알수 없는 캐러멜 풍 시럽을 마구 끼얹은 프렌치 토스트를 몇조각 뜯어먹고 남겨서 그것도 내가 커피와 먹어 주었다.
학교에 가서 동생에게 빵 봉투를 전해주고 엄마와 열심히 수다를 떨며 집으로 돌아왔다.
늘 보기만 하고 먹질 못하는 예쁜 허니 점보 토스트를 다음에는 꼭 먹자고 다짐하며 사온 빵들을 늘어놓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차곡차곡, 까페에서 돈 쓰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며 열심히 먹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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