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알기 전에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있었다. 애인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그때마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애인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그리고 호의와 경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를 받고 만족하지 않는 남성은 없다.
그래서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다섯 가지를 주고 남편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받았다. 고작 다섯 가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고작 그 다섯 가지.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리라. 우리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몸을 섞고, 낮이고 밤이고 말을 섞고,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더한 속박을 바라고 소유를 바라고 질투와 말다툼을 바랐다. 서로를 모조리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바라고 그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공허함도 바랐다.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감미로움을 바라는 것과 거의 같은 크기로,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고통을 바랐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혼했다. 서로 모든 것을 주고, 받은 것 전부를 맛보기 위해.
--- pp.160-161, 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호의와 경의.
요즘 드문드문 스스로 묻는 물음에 대한 그녀 나름의 대답을 아직 사 읽지도 않은 책 소개 페이지에서 만났다.
무수한 폄하에도 늘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해온 내 애정에 대한 답가를 받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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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교보에서 우연히 이여자의 실물을 보고 폄하할 수 없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어. 무서운 여자였지 ㅎㅎㅎ 아,,그런데 저 결혼관은 정말이지 시적이면서 현실적이네. 무섭다. 시퍼런 일본도의 날처럼 무서워..
그때 언니가 싸인 받아다 준 책 잘 가지고 있지 ㅋㅋ 저 결혼관 무서운데, 그런데도 읽고나니 저렇게 결혼하고 싶어졌어. 서로 잡아먹어버리고 말겠다는 무시무시한 집념을 가지고.
연애할 때보다 확실하게 잡아먹을 수 있나보다...라고 생각하니 약간은....견딜 수 없다 뭔가 이 기분.
확실히 나는 필요 이상으로 결혼을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나 봐.
응 우리는 그런 경향이 있지. 사실 결혼이란 관념만큼 아름다운게 아니라는걸 많은 간접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으면서도.
오늘의 나는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고통을 바랐다"에 공감하면서도 진심으로 무서워졌어.
상대는 언제까지 나를 참아줄 수 있을까. 아 작년에 뚫은 귓구멍에서 피가 철철 났어. 정말 왜이래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