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는 꽤 다른 스타일의 범죄소설 두 권을 함께 읽었다.
일본에서 온 미야베 미유키와 미국에서 온 제드 러벤펠드.
내가 미야베 여사의 애독자라는 사실은 지난 'Le Signet' 포스트들을 보면 금방 눈에 띌테고,
제드 러벤펠드는 동생이 사다놓은 걸 내가 물려읽게 되었다.
두 권 모두 서점에서 봤다면 내 흥미는 끌었을지언정 집어 들지는 않았을 것 같은 스타일들인데
친구 덕, 동생 덕에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1

스나크 사냥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군은 읽어도 읽어도 줄지 않는다.
지금까지 꽤 열심히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읽을 만 해 보이는 새 책들이 턱까지 쌓여있다.
한꺼번에 몰아보기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도서관이나, 주변인들을 통해 기회가 될 때
한 권 한 권 아껴가며 읽을 생각이다.

스나크 사냥은 절친한 친구인 프레지당뜨 뮹뮹님의 협찬으로 빌려 읽었는데,
하 많은 미미여사의 책들 가운데 제목도, 표지도 선뜻 고르지 않았을 분위기였기 때문에  
뮹언니가 아니었으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작품이었다.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고,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아주 예의바르게)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한다.
캐럴의 스나크 사냥은 텍스트를 쉽게 구할수가 없는지라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
이 '스나크 사냥'이 번역되면서 초판 한정으로 캐럴의 스나크 사냥도 소책자 형식으로 발행하여
독자들에게 선물로 안겼다던데, 정말 대단히 친절한 출판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읽은 건 2쇄 였다. 아까비!)

상당히 터프한 제목이지만 기존의 미야베 여사의 분위기는 그대로다.
매력적이고 정이 가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어쩔 수 없는 이 사회의 '이름없는 독' 같은 인물들도 존재한다.
독특했던 것은 작품의 구성인데,
일본 현대 사회의 단면을 하나씩 깊게 들추는 미야베식 정통 사회파 소설들이
대단히 깊이있는 취재를 통한 배경지식과 함께 상당히 길고 진중한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면
단 하룻밤에 걸쳐 일어나는 이 사건의 스피디한 전개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쪽이든, 탄탄하고 정교한 구성력은 감탄할 만 하다.
낚시와 사냥, 그리고 총에 관한 이야기가 외외로 무척 흥미로웠다.
쏘는사람에게 돌아오는 산탄총과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사이의 줄긋기, 그리고
괴물과 그를 공격하는 괴물에 관한 아이러니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2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이 책이 막 출간되었을 당시,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영미권 소설의 경우, 번역본을 사지 않으려는 편이라 그냥 그러고 말았는데,
몇 달 전에 우울한 동생과 서점에 갔다가 동생이 이 책을 골랐다.  
덕분에 동생이 먼저 읽고, 부담없이 내가 물려읽었다.

190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심리 범죄 소설이라는 것 만으로도 여러 사람의 구미를 당겼을 법한 작품이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심리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여러가지 요인을 안고 있음은 분명하다.
덕분에 '다빈치 코드'처럼, 이 소설도 영화화 될 예정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뉴욕의 갈색 풍경을 찍은 사진을 물에 띄우고 여러가지 염료를 풀어
종이에 찍어낸 마블링을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읽어온 몇 안되는 미국 범죄 - 미스테리 - 소설들의 공통점은
한 작품에 들어가는 자료의 양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팩션(fact+fiction)을 골자로 하는 역사물, 범죄물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런 경향은 존 그리샴 류의 소설들이 한참 잘 나갔던 시절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하지만 과잉이랄까.
다빈치 코드를 끝까지 읽고 그 허무함에 한숨을 내 쉰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 할 만한 빈약함을 이 작품 역시 끝내 떨쳐내지는 못했다.
심리학 전반에 걸친 '자극적인' 지식들과 그 자체로서는 눈을 번쩍 뜨게 할만한
햄릿에 관한 새로운 정신분석학적 고찰 등 이 책에는 여러가지 재밌거리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지나쳐 좀 어지럽다, 급기야는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자료는 많지만 정작 사건의 얼개 자체가 빈약해 그 자료들조차 결국 곁다리에 지나지 않아 아쉽다.

이 소설을 읽고 '누나, 재밌긴 한데 좀 허무해'라던 동생의 말을 소설의 결말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소설도 블록버스터급, 혹은 그렇게 만들어 질 것을 염두해두고 쓰는 미국인가 싶어 웃음도 났다.

어쨌든, 사실과 최대한 부합하기 위해 실존했던 인물, 사건, 심지어는 1900년대 뉴욕의 모습을
소설속에서 최대한으로 재현해내고자 했던 작가의 공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해당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사람까지 고용했었다고 한다.)
덕분에 읽는 동안 기억을 더듬어 뉴욕의 이길 저길을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2008/04/04 10:42 2008/04/04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