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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Das Rheingold / L'Or du Rhin
2013 Opera Bastille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
라인의 황금
2013 오페라 바스티유


작년 가을부터 예매해두고 기다렸던 파리 바그너 링 사이클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라인의 황금'.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시즌이라 세계 각지에서 야심찬 프로젝트들이 예고된 바 있다. 이미 작년 하반기에 개막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링 사이클이 지금까지 공연중이고 릴레이 하듯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그 뒤를 이어 올 상반기 반지 시리즈의 막을 올렸다.

작년 가을, 한참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마침 뉴욕에 들러 메트의 '신들의 황혼'을 구경했더랬다. 반지 시리즈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긴 했지만 일정상 전 시리즈를 다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있는대로 끊은 티켓이었다. 영화 뺨치는 무대장치와 과감한 스케일로 유명한 메트의 링사이클인지라 한 작품이라도 직접 본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렇지만 바그너조차도 미국적이랄까, 영화의 영향인걸까. 미제 인터프리테이션이니 미국냄새가 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처음에는 눈을 확 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반지의 제왕이나 (아주 좋아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스타워즈 같은 판타지, 혹은 사이언스 픽션 필름의 냄새. '마농'을 보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메트의 기획력이나 연출력은 객관적으로 훌륭하지만, 그 스타일이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느냐면 아니랄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종일관 씩씩하게 노래하는 브룬힐데에게서는 매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파리의 반지시리즈를.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최고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지만, 조건상 자주 드나들며 크고 작은 재미를 느낄 기회가 많았다. 각 작품과 작곡가의 정통성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혁신을 이어가는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단들의 연출에 비하면 파리 오페라는 장르 자체의 클래식함은 유지하되 더 과감하고 독창적인 신을 보여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이 오리지널리티로, 아방가르드로, 세련된 미니멀리즘으로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저 싫기도 했다.

하지만 두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가 실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가수들은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고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기대했던 것 보다 심심했지만 나쁜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것은 무대 연출이었다. 사람마다 제각기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무대는 딱히 모던하다고도 독창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이 애매했고 몇몇 의상은 흉하다 싶은 수준이었다. 사람마다 '라인의 황금'에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오페라는 시청각예술이다. 시각적인 감흥을 줄 수 없다면 반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쩐지 나는 파리 오페라의 '라인의 황금'이 무성의하다고 여겨졌다.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반지' 연작은 오페라 네 편이 함께 가는 대작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주로 네 작품을 순차적으로 모두 관람하며 - 오페라 네 편의 티켓을 함께 구입한다는 뜻이다. -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은 만큼 음악적 애정 이상으로 지적인 관심을 쏟는다. 때문에 세계 유수의 오페라 하우스들이 반지 시리즈의 연출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 것이다. 링 사이클은 무조건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시켜야 할 관객의 기대가 큰 만큼 어떤 스타일이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완성도가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나의 실망은 그런 측면에서 가졌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던 탓이었다.

아마도 그날의 실망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것 같다. 이날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박수소리에서는 으레 섞여있기 마련인 흥분섞인 탄성이나 찬사의 목소리가 거의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02/10 03:02 2013/02/10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