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파스티스
피터 메일
황보석 옮김


 시험 기간엔 정말 책이 잘 읽힌다. 어떤 책이든지 이전에 질질 끌고있었던 책은 시험기간에 끝을 볼 수 있다. 청개구리 심보랄까.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던 이번 중간 고사 기간에는 추석 연휴에 KTX안에서 읽으려고 샀던 피터 메일의 소설을 깔끔하게 끝냈다.

 프로방스를 사랑하는 작가로 잘 알려진  피터 메일은 '나의 프로방스(A year in provence)'라는 에세이로 처음 만났다. 따뜻하고 재치있는 문체로 나 역시 사랑해 마지 않는 아름다운 프로방스를 그린 그의 글을 읽으며 작가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차였다.  적적하던 어느 날 저녁 집에서 조금 걸으면 있는 헌책방에 구경을 갔다가 발견한 이 두권짜리 소설도 그래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작품은 런던과 뉴욕을 오가는 광고 업계의 성공한 사업가 사이먼 쇼가 돈으로 보상받는 삭막한 일상을 뒤로하고 프로방스에 호텔을 열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프로방스의 거칠고 귀여운 악당들이 준비하는 은행 털이 이야기가 차례로 엮이며 전개된다. 머릿 속에 그리기 쉬우면서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세련된 런던, 뉴욕과 풍족하고 아름다운 루베롱 등지를 오가며 일으키는 일들이 정감있고 편안한 가운데 쉽게 읽힌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로 조금 산만한 감도 있지만, 밥알을 곱씹듯 독자가 조금만 집중해서 읽으면 풍성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작가의 문체. 그 감각적인 표현이나 재치있는 묘사 뒤에는 광고 AE로 일했던 작가의 탄탄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아, 그래서 그렇구나 수긍하기 이전에 이미 피터 메일의 글은 내게 베끼고 싶을 만큼의 센스와 매력으로 가득했다.
 번역본을 읽었음에도 순간순간 그의 필담에 감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10여년 전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황보석씨의 내공 덕분이리라.
 
 이 책을 읽으며 열 세살 때 이후로 10년만에 남자 주인공에게 반해버렸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을 읽고 울거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나로서는 반갑고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랑에 빠지기 쉬운 남자, 그래서 결혼도 두어번 했지만 전부 이혼으로 마침표를 찍은 부드럽고 유능한 사이먼 쇼. 다시 빠리나 런던으로 가면 그와 같은 남자를 찾을 수 있을까 엉뚱한 생각을 몇번이나 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레트 버틀러와 사이먼 쇼를 통해 나이 스물 셋에 드디어 '이상형'을 정립하는 쾌거를 거둘 수도 있었다. 이쯤이면 참, 여러모로 즐거운 독서. 갑자기 리옹을 여행하며 맛보았던 샐러드가 무척이나 그립다.


 


       

2007/10/28 18:56 2007/10/28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