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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uki et Nina 2011/05/23
  2. Confessions 2011/05/10

Yuki et Nina

from Le Cinéma 2011/05/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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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 et Nina
유키와 니나
/Hippolyte Girardot, Nobuhiro Suwa

어쩌다 프랑스인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러다 이혼하게 된다면. 원치 않는 결말이지만,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유키는 그런 상황을 겪는 '아이'다. 프랑스인 아빠와 일본인 엄마가 이혼을 결정했고 엄마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래서 단짝인 니나와 헤어져야 하고, 생각했던 방학도 엉망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모야 어떻든 프랑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불어를 받아들여 말하게 되었듯, 그런 상황도 아이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소화를 시키든 얹혀 고생을 하든 아이의 몫이다.

영화는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모습을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환상적인 터치로 그렸다. 프랑스인 감독과 일본인 감독의 콤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의 일례랄까. 미적이면서도 완전히 프랑스 풍이라 단언하기에는 담백하다. 마치 유키 역을 맡은 노에 삼피의 얼굴과, 그 아이가 입고 나왔던 깔끔한 풀색 티셔츠와 치마처럼. 그래, 그건 분명히 너저분하고 정신없는 - 잡히는 대로 주워입어서든, 조화는 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아하는 걸 둘렀기 때문이든 - 프랑스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디테일이였다.

후반부에 유키가 숲속에서 겪는 환상과 엔딩을 보면서 어쩌면 남성 감독들이 이렇게 여성적인 열쇠를 제시할 수 있었을까 싶어 놀라웠다. 두 감독이 게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게이는 남성을 좋아하는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니까. 나는 그 환상이 아마도 유키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때 엄마로부터 전해진 기억이 아닐까 생각했고, 영화 후반에는 그런 내 생각이 아주 터무니 없는 건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폴리트 지라르도 감독은 일전에 빨간풍선이라는 작품에서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배우를 겸하고 있는 사람이라 연출 경력이 많지는 않지만 아시아 감독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는 모양이다.
2011/05/23 23:51 2011/05/23 23:51

Confessions

from Le Cinéma 2011/05/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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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白(2010)
고백
/中島 哲也 (なかしま てつや)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싶다고 생각했던 건 마츠 다카코 때문이었다. 마츠 다카코 만으로도 영화표를 살 이유는 충분했지만 극장 시간표와 내 일정의 엇박자 탓에 못보고 넘어가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연이 닿은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KTX CINEMA 좌석표를 끊었다. 사실 표를 예매할 때만 해도 영화좌석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역에 가보니 아는 포스터가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어 흥분된 마음으로 표를 바꿨다. 기회에 KTX CINEMA에 대한 소감을 한 줄 덧붙이자면, 화면이나 사운드 같은 기본 조건이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라 취향에만 맞는 영화라면 이용해볼만 한 서비스였다. 다만 화면과 가까울 수록 보통 영화관과 마찬가지로 목이 아프니 좌석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감독이 국내에서는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으로 유명한 나카시마 테츠야 라는 말을 듣고 좀 의외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군데군데 익숙한 스타일이 묻어난다. 섬세하고 노골적이나 대단히 불편하지는 않다. 소설을 가지고 여러차례 작업을 해 본 감독인지라 밀도 높은 원작을 가지고도 균형이 잘 잡힌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감각적이면서도 마감이 잘 되어있는 연출도 눈길을 끌었다. 원작을 먼저 접한 사람들로서는 이런 저런 아쉬움이 있겠지만 영화만 놓고 본다면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잘 찍었다는 평을 들을 만 하다고 본다.

이 작품을 보면서 굉장히 인상 적이었던 것은 감독의 혹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 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 시선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냉정한 스토리와 냉정한 시선은 본질적으로 아주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액자의 안과 바깥 만큼이나 다른 것이고,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범죄 소설이 가슴이 아플만큼 싸늘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뒤쫓아 감으로써 특유의 인간애적인 울림을 형성하고 있다면, 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은 싸늘한 이야기를 더욱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함과 동시에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크게 거슬리지도 않는, 무난한 배우들의 연기와 그에 비해 강한 감독의 터치, 일본 영화 특유의 깔끔함이 어우러져 비교적 안정적인 영화가 되었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에 장르적 특성이나 자극적인 문구로 인해 큰 인기를 얻기는 어려웠겠지만 만듦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쉬리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국내 성공작들이 하나 둘 씩 해외 상영관에 걸리던 90년대, 한국 영화계는 헐리우드에 잠식당한 제 3세계 영화계 - 혹은 일본 영화계-를 은근히 비꼬며 한국영화의 높은 극장 점유율을 자랑했었다. 당시 한국 영화는 진정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대기업 자본중심의 투자 배급 시스템, 상품으로써 손익분기점에 목숨걸 수밖에 없는 제작 환경, 젊은 영화인들의 재기발랄한 시나리오 대신 이미 성공한 시나리오 손질해 우려먹기 라는 순차적 악순환의 고리는 2011년 한국 영화계를 더 이상 매력적인 작품을 낳지 못하는 불임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고질적인 문학적 토양의 빈곤 더하기 시나리오 작업을 연출의 부업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감독들의 독야청청 제왕의식이 눈 밭에 서리 역할을 제대로 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문화부 장관부터 팬픽 쓰는 중학생까지 원 소스 멀티 유즈를 부르짖는 오늘날 한국의 영화산업이 생산해내는 '상품'들은 더 이상 '메이드 인 재팬' 라벨을 우스워 할 수 없는 심난한 모양을 하고 있다. 
2011/05/10 19:22 2011/05/10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