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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옛날이 좋았다는 회장님 자장면 (2) 2014/08/27
  2. 새벽 꽃 마실 2014/08/26
  3. 2014 2/4 - Summer : Softer than a summer night (2) 2014/08/13
  4. 2014 1/4 - Spring : Midnight dishes (4) 2014/08/12

2014. 08

도원 / 더 플라자

 

사촌 동생에게 축하할 일이 생겨 어디서 맛있는 밥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 플라자 호텔의 중식당 '도원'에 다녀왔다. 최근 주요 일간지를 비롯해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차였다. 

코스나 잘 한다는 샥스핀, 좋아하는 가지 요리도 궁금했지만 첫 방문에 나름의 졸업이랄까, 책걸이 축하 점심이었기 때문에 일품으로 고전적이기 그지없는 탕수육과 자장면, 그리고 호기심에 지마장면을 주문했다. 한화 호텔앤리조트 외식사업부에서 운영하는 티원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맛만 있으면 조만간 다시 와서 다 먹어 보고 말겠다는 각오였다.

탕수육 소스에 들어있는 생과일과 호텔 탕수육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바삭하고 가벼운 튀김옷의 첫 인상은 훌륭했다. 고기 한 입, 과일 한 조각 돌아가며 먹는 것도 별미였다. 다만 덜어 준 양을 다 먹어갈 때 즈음에는 소스의 단 맛이 과하다는 느낌에 그만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웠던 건 자장면이었는데 타이밍의 문제였을까, 받고 비비는데 면이 뭉치기 시작하더니 소스에 윤기가 사라져 금새 푸석푸석한 자장면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아마도 공들여 만들었을 소스마저 순식간에 매력을 잃고 말았다. 직원들이 밖을 오가며 분명히 우리의 식사 속도를 체크하는 것 같았는데 자장면이 그렇게 나온 건 아주 실망스러웠다. 

도원 실명제 메뉴에 들어있는 지마장면은 무척 매력있는 면요리였다. 차가운 비취면에 땅콩소스를 부어먹는데 차갑고 달콤하고 고소한 맛에 채 썬 파프리카와 관자가 깔끔하면서도 아쉬움 없는 맛을 냈다. 중식당에 가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자장면으로 식사를 하는, 나는야 자장러버지만 누군가 여기 뭐 특별한거 없나? 하고 묻는다면 권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족하며 남김없이 다 먹었다. 

디저트로는 망고 시미로가 나왔는데,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들이미는 것이 못마땅했다. 우리가 그렇게 밥을 늦게 먹나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받았다. 그런데 한 스푼 떠먹어보니 망고 주스 맛이 몹시 강해 잠자코 받은 것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생망고 갈아달라고는 못하지만 냉동 망고 과육을쓰거나 아니면 다른 디저트를 내 줄 것이지, 깡통 망고 주스를 연상시키는 기분 나쁜 뒷맛이 불쾌했다. 

호텔 식당 답게 깍듯하면서도 붙임성 있는 서비스는 좋았다. 직원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선을 넘지않는 상냥함은 좋은 인상을 주었다. 문제는 서빙 타이밍인데, 이건 주방과 홀 간에 엄격하게 손발을 맞춰줘야 하는 부분이다. 직원들의 중간 휴식을 잘라먹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먼저 나오는 음식과 나중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 서빙 타이밍은 고급식당을 자처한다면 강박증 수준으로 지켜야 한다. 마감이 가까워졌다고 살짝 살짝 먼저 준비해놓고 파트를 닫는 습관이 맨 마지막으로 그 품목을 받는 손님에게 대단한 실망을 안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턴 시절 나는 아뮤즈 부슈를 조합해 내놓는 일을 했는데 한번은 손님의 예약 시간에 맞춰 플레이트에 가장 먼저 깔리는 퓨레를 미리 깔아놓은 적이 있었다. 손님은 시간에 맞춰 들어왔지만 그걸 본 셰프는 내게 그 접시는 디쉬워셔로 보내고 새로 퓨레를 깔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퓨레가 마르니까.

도원의 자장면이 원래 내가 받은 자장면 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장 자체는 고소했고 재료를 다듬은 모양새도 일정하고 깔끔해 고급 중식당의 자장 다웠다. 문제는 그 모든 공을 날려버린, 가장 좋은 타이밍을 넘긴 후에 서브된 것이 분명한 면이었다. 

고급식당에 가는 것은 화려한 분위기에 나 이렇게 비싼거 먹으러 다녀요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정확한 테크닉으로 조리해 편안하게 서브해 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다이닝에 있어 중요시 되는 모든 기본 규칙들을 정확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고급 식당을 찾는다. 그리고 업장이 그런 기대와 믿음에 부응해 줄 때 시중 음식점의 두 세배 되는 식대가 아깝지 않은 것이다.

 

 

2014/08/27 18:10 2014/08/27 18:10

새벽 꽃 마실

from Tous Les Jours 2014/08/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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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오전 네시 사십 오 분. 푸르스름한 창을 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 뒤척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다섯시 반. 고양이 세수를 하고 홍차를 끓였다. 시동을 걸며 시계를 보니 다섯시 오십 분. 주유를 하고 올라탄 북로에는 제법 차가 많았다. 그래도 반포까지는 삼십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꽃시장 드라이브와 과천 국립 현대 다녀오기였다. 과천은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지만 일단 꽃시장은 해냈다. 나는 운전에 서투르고, 여전히 운전석 보다는 조수석을 좋아하지만, 꼭두 새벽 나를 꽃시장에 데려가 달라고 말했을 때 달가워 할 사람은 택시 기사 뿐이다. 어쨌든, 리시안셔스 두 단과 스토크, 미스티 블루를 한 단 씩 사서 돌아오는 길에는 운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한 밤중 혹은 이른 새벽, 달뜬 마음을 식히기에 꽃 시장 만큼 좋은 곳이 서울에 또 있을까.

꽃을 손질해 물을 올리고 꽂으며 문득 '미친년 꽃다발'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것을 울이라 부르든 조라 부르든 마음이 급격이 기울어 어쩔 줄 모를 때 평정심을 찾는 방법이 꽃이라면 나쁠 건 없다. 이제 나는 원할 때면 언제든지, 한 밤 중이든 이른 아침 이든, 혼자서도 꽃을 사러 달려 나갈 수 있으니까. 괜찮다. 나쁠 건 하나도 없다.
 

2014/08/26 00:35 2014/08/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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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레 꼬삔 Soirée copines (아가씨들의 저녁)

여름을 맞이해 파리와 런던의 친구들이 일시 귀국했다. 여기에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파리시절 친구 둘과 파리를 드나들며 이들 모두와 친분이 있는 박실장을 포섭해 여름 저녁 초대 멤버를 짰다. 쉽지 않았다. 수 개월 전부터 추진, 귀국 일정을 확인하고 가능한 날짜를 그러모아 약 한 달 전 날짜를 정했다.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불참자에게는 처절한 응징이 가해질 것임을 수 차례 경고했다.

모두 프랑스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메뉴 구성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여름에 어울리는 무언가가 없을까 생각하다 남프랑스와 스페인이 떠올랐고 나는 피페라드에 꽂혔다. 하지만 본식이 되려면 피페라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민하다 인턴 시절 스태프 밀로 먹었던 닭 피페라드를 떠올렸고 닭을 새우로 대체, 부족한 단백질은 계란과 흰살 생선으로 보충하기로 마음먹었다. 샘플이 될 만한 레서피들을 찾다보니 흰살 생선과 피페라드, 수란의 조합은 꽤 흔한 편이더라.

그날 아무도 몰랐던 것 같지만 한가지 신경썼던 것이 샐러드의 색과 디저트의 색이었다. 소르베티에 없이 한 시간에 한 번씩 포크로 긁어가며 그라니타와 소르베를 만들던 중 블루베리의 보라와 망고의 노랑에 영감(?)을 받아 그린 샐러드에 적양배추와 노랑 파프리카로 포인트를 주었는데 전식과 디저트가 너무 멀어서일까 별 반응은 없었다. 다음에는 그렇게 포인트 컬러가 있을때 테이블에 같은 색깔의 센터피스를 함께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골든볼과 알스트로메리아가 있었다면 좋았을걸. 지난 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꽃 장식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날의 막내 보라죵이 엄청나게 근사한 꽃다발을 안겨주어 굉장히 기뻤다. 아나킴이 오래 전부터 갖고 싶던 스타일의 멋진 꽃병을 가져다 준 직후라 더욱 반가웠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별 탈 없었던 전식에 비해 짜게 되어버렸던 피페라드였다. 가자미 필레가 슴슴했다면 조금 나았을텐데 생선도 딱 맞게 간이 되어버려 같이 먹었을때 상당히 간간했다. B 토마토 소스를 쓸때 유의해야 하는 점이 바로 이 짠맛인데, 아직 가늠을 잘 못하겠다. 시판 토마토소스 특유의 단 맛이 없어 애용하지만 조금만 가열해도 금새 짜진다. 가열을 할때는 생 토마토나 스톡을 이용해 간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피페라드에 얹은 계란의 굽기도 아쉬웠던 것이, 오븐에서 좀 늦게 빼는 바람에 키쉬에 들어가는 계란처럼 거의 완숙이 되어버렸다. 다음에는 수란을 얹거나 오븐에서 빼는 타이밍에 유의해야겠다. 그나마 곁들일 흰빵이 있어 다행이었고, 가자미 필레는 단순한 맛임에도 다음날 생각나더라는 칭찬을 들어 위안이 되었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각양각색이라, 다시 그렇게 모이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함께 한 때를 보냈던 파리에서의 우정을 기념하며 모여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 수 있어 즐거웠다. 덧붙이자면 다들 어찌나 와인을 술술 넘기는지 식전주로 개시한 크레망은 따르기가 무섭게 사라지고, 알콜쓰레기 나와 박실장이 잔을 덮은 후에도 와인 두 병이 우습게 사라지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파리 런던 서울 광주에서 모여준 고마운 아가씨들, 그런 우리의 완벽했던 원 써머 나잇 One summer night 이었다.

Photo by 박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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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13
Menu été

•전식 Entrée
키쉬 로렌&그린 샐러드

•본식 Plat
가자미 필레 버터구이/새우 피페라드/감자 구이

•후식 Dessert 
블루베리 그라니따&망고 요거트 소르베

•미냐르디스 Mignardise
초콜릿 트러플&피스타치오 루쿰
민트 티

•와인 Vins
리무 크레망
수아베 클라시코 수페리오레
부르고뉴 피노 누아

Guests
HN Kim
NH Park
HN Yoon
DR Lee
BR Jeon

MERCI.
2014/08/13 11:58 2014/08/1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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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접시 닦기


유학 시절 끌어모은 오만가지 살림을 모두 끄집고 귀국하면서, 내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서울에 거처가 마련되면 큰 식탁을 장만해서 친한 친구들을 초대하자. 서로 잘 알고 함께 보낸 시간이 충분하며 음식을 한 가지쯤 망치고 화이트 잔에 레드를 따라 대접해도 괘념치 않을 아주 좋은 친구들만. 한 달에 한 번은 무리. 그렇다고 일년에 한 두 번은 드물다. 그러니까 한 분기에 한 번, 한 계절에 한 번으로 하자. 이상적인 멤버는 여섯 명. 물론 나는 친구가 많지 않으니 절친들을 모두 끌어모아도 육인용 테이블을 채울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 내 몇 안되는 절친들은 대인관계가 원만해 좋은 친구들이 많고 그 중에 몇몇은 나와도 반기는 사이이니 손님 구성은 문제없다. 적어도 1년은.

그렇게 시작한 첫번째 손님 초대였다. 확장 6인용, 최대 8인까지 소화할 수 있는 나의 자랑스러운 익스텐션 테이블은 안타깝게도 의자가 준비 되기 전이라 사용할 수 없었다. 커다란 식탁을 옆에 두고 앉은뱅이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면서도 유쾌한 나의 손님들은 별 불만이 없었다. 주빈으로 정한 커플이 공식적으로 임신을 발표했고 섭섭했던 지난 일에 대한 짧은 성토대회와 '너네는 언제?'를 주제로 다른 유부클럽 멤버들의 자녀계획에 관한 브리핑이 있었다.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기억을 위해 덧붙이자면, 저마다 발리에서 온 쿠키, 모리셔스의 바닐라 티, 와인과 엄청나게 큰 휴지까지 들고 찾아와 준 점잖은 손님들이었다.

전체적으로 완전히 망한 품목은 없지만 수정해야 할 흠들이 여럿 있었다. 양파스프는 맛이 기대 했던 것 보다 좋았지만 오븐 그릴 밑에 너무 오래 두는 바람에 그뤼에르의 색깔이 많이 진해졌다. 프랑스에서는 흔히 보는 정도였지만 탄 음식에 거부감이 있는 한국 친구들에게 대접할때는 색깔을 덜 내는 게 좋아보인다. 연어 시금치 키쉬는 맛도 굽기도 마음에 들었다.

프리카세 드 볼라이는 만들면서 애를 좀 먹었지만 진한 닭 육수맛에 대호평을 받았다. 다만 서빙할때 접시에 소스를 전부 부은 것이 옥의 티. 고기위에 적당히 끼얹어주고 소스 보트에 따로 서빙했으면 훨씬 보기 좋았을텐데. 풍성하게 준비한 그린 샐러드는 녹색과 방울토마토의 빨강이 대비되어 예뻤다.

전식과 본식이 손이 많이 가는 종류들이라 디저트는 간단하게 초콜릿 퐁듀를 준비했는데 반응은 가장 뜨거웠다. 역시 딸기와 초콜릿은 어딜 가나 사랑받는 조합. 다만 초콜릿을 그냥 퐁듀그릇에 편안히 녹이면 되었을 것을 미리 중탕하면서 바닥 온도가 너무 올라가 초콜릿이 눌어 붙는 바람에 나중에는 초콜릿을 긁어먹어야 했다. 망고와 딸기를 좀 더 내고, 페퍼민트 티로 마무리 했다.  

이윽고 떠들썩했던 저녁식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친구들을 배웅하니 자정이 되었다. Fip을 들으며 접시들을 정리했다. 



2014. 3. 15
Menu Printemps

양파 스프/ 연어 시금치 키쉬
프리카세 드 볼라이 / 쌀밥 / 그린샐러드
밀크 초콜릿 & 과일 퐁듀

Guests
JM Lee & JYR Yoon
BM Kim
HS Ham
MH Ryoo

MERCI.
2014/08/12 22:32 2014/08/12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