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바스티유'에 해당되는 글 5건

  1. L'Anneau du Nibelung - Siegfried 2013/04/08
  2. L'Anneau du Nibelung - L'Or du Rhin 2013/02/10
  3. MANON 2012/02/16
  4. LA DAME DE PIQUE 2012/02/16
  5. RIGOLETTO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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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Siegfried
2013 Opera Bastille

오후 여섯시에 바스티유에 들어가 열 한시를 훌쩍 넘겨 나오는 프로그램은 역시 만만치 않다. '발퀴레'에 비해서 음악이 세지 않고, 스토리면에서도 드라마틱한 요소가 좀 덜하기 때문인지, 공연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굉장히 지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눈과 귀를 열어놓고 정신줄은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시간 오십오 분. 네시간에 달하는 공연을 내내 집중해서 본 다는건 평소에도 남다른 산만함을 자랑하는 내게 애시당초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게다가 앞서 두 번의 공연에서, 중간중간 찾아오는 좋은 대목을 더 맑은 정신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졸리면 졸고, 자막을 읽기 싫으면 무슨 얘긴지 모르고 넘어가는게 낫더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졸고, 적당히 지루해하는가 하면, 때로는 눈을 크게 뜨고 때로는 웃어가며 니벨룽의 반지 제 3 장, '지크프리드'를 봤다.

가장 좋았던 것은 무대, 센scène이었다. 1, 2, 3 막이 모두 마음에 들기는 처음이었다. 이번에 느낀 건데, 나는 컬러풀하거나 세부적인 무브먼트가 있는 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1막에서는 무대 위 식물들의 초록과 빨간 소품들의 대비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색감에서 어딘가 모르게 어린아이가 있는 집의 분위기를 느꼈다. 지크프리드를 데려다 키운 난쟁이 미메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함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막에서 대장간의 큰 환기팬이 실제로 돌아가며 무대위에 움직이는 그림자를 만든다거나, 인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꺼진다거나 하는 부분들에도 눈이 갔다. 왜 그런 데 반응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시절부터 인형의 집 주방 놀이의 오븐에 실제로 빨간 불이 들어온다거나 냉장고에 플라스틱 우유곽이 들어있다거나 하는 데 무척 감동하곤 했다.

이번에도 가수들의 노래에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지크프리드 역의 토르스텐 컬 Torsten Kerl은 그 긴 공연 내내 쉬질 않는데도 시종일관 힘차면서도 편안한 - 힘있는 후륜구동 독일명차의 안정적인 승차감을 떠올리게 하는 - 노래를 들려주었다. 게다가 두려움을 모르는 어린 지크프리드를 어찌나 그렇게 천진하게 연기하시는지. 지크프리드가 나무가지를 질질 끌며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그 귀여움에 웃음을 터뜨린 관객은 나 뿐이 아니었다. '발퀴레'에서부터 완벽한 브륀힐데로 눈길을 끌던 알윈 멜러Alwyn Mellor 는 이번에도 비범하고 아름다운 브륀힐데로 분했다. 사실 가수들에게 노래 잘한다는 이야기는 우스울수 있지만, 모든 오페라 가수가 공연장을 나올 때, 노래가 정말 좋았다는 생각에 브로셔를 한번 더 찾아보게 하지는 않는다. 이 날의 가수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내용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공연을 다 보고서 불현듯 떠오른 농담이 있었다. "네 남자친구 태어났대. 가봐." '발퀴레' 에서 지크프리드의 부모인 지그문트와 지클린데를 지켜주고 그 벌로 영원의 잠에 빠졌던 브륀힐데는 (우리식으로는 조카 뻘인) 지크프리드의 키스로 긴 잠에서 깨어나 그와 사랑에 빠진다. 돌고 도는 인간사, 이러한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신화의 세계는 오늘 날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잰 걸음으로 바스티유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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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00:15 2013/04/0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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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Das Rheingold / L'Or du Rhin
2013 Opera Bastille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
라인의 황금
2013 오페라 바스티유


작년 가을부터 예매해두고 기다렸던 파리 바그너 링 사이클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라인의 황금'.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시즌이라 세계 각지에서 야심찬 프로젝트들이 예고된 바 있다. 이미 작년 하반기에 개막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링 사이클이 지금까지 공연중이고 릴레이 하듯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그 뒤를 이어 올 상반기 반지 시리즈의 막을 올렸다.

작년 가을, 한참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마침 뉴욕에 들러 메트의 '신들의 황혼'을 구경했더랬다. 반지 시리즈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긴 했지만 일정상 전 시리즈를 다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있는대로 끊은 티켓이었다. 영화 뺨치는 무대장치와 과감한 스케일로 유명한 메트의 링사이클인지라 한 작품이라도 직접 본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렇지만 바그너조차도 미국적이랄까, 영화의 영향인걸까. 미제 인터프리테이션이니 미국냄새가 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처음에는 눈을 확 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반지의 제왕이나 (아주 좋아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스타워즈 같은 판타지, 혹은 사이언스 픽션 필름의 냄새. '마농'을 보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메트의 기획력이나 연출력은 객관적으로 훌륭하지만, 그 스타일이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느냐면 아니랄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종일관 씩씩하게 노래하는 브룬힐데에게서는 매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파리의 반지시리즈를.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최고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지만, 조건상 자주 드나들며 크고 작은 재미를 느낄 기회가 많았다. 각 작품과 작곡가의 정통성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혁신을 이어가는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단들의 연출에 비하면 파리 오페라는 장르 자체의 클래식함은 유지하되 더 과감하고 독창적인 신을 보여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이 오리지널리티로, 아방가르드로, 세련된 미니멀리즘으로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저 싫기도 했다.

하지만 두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가 실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가수들은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고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기대했던 것 보다 심심했지만 나쁜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것은 무대 연출이었다. 사람마다 제각기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무대는 딱히 모던하다고도 독창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이 애매했고 몇몇 의상은 흉하다 싶은 수준이었다. 사람마다 '라인의 황금'에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오페라는 시청각예술이다. 시각적인 감흥을 줄 수 없다면 반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쩐지 나는 파리 오페라의 '라인의 황금'이 무성의하다고 여겨졌다.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반지' 연작은 오페라 네 편이 함께 가는 대작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주로 네 작품을 순차적으로 모두 관람하며 - 오페라 네 편의 티켓을 함께 구입한다는 뜻이다. -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은 만큼 음악적 애정 이상으로 지적인 관심을 쏟는다. 때문에 세계 유수의 오페라 하우스들이 반지 시리즈의 연출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 것이다. 링 사이클은 무조건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시켜야 할 관객의 기대가 큰 만큼 어떤 스타일이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완성도가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나의 실망은 그런 측면에서 가졌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던 탓이었다.

아마도 그날의 실망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것 같다. 이날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박수소리에서는 으레 섞여있기 마련인 흥분섞인 탄성이나 찬사의 목소리가 거의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02/10 03:02 2013/02/10 03:02

MANON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3:46
MANON
/MASSENET
OPÉRA BASTILLE
le 13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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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있으니 이왕이면 프랑스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봐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때, 이미 '마농'의 티켓은 수 주 전에 오픈되어 100 유로 이하의 좌석은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를 예매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아쉬움도 잊어가던 어느 저녁, 번역 숙제가 싫어 책상 앞에서 몸을 비비 꼬고 앉아있는 내게 오페라 파리가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오늘 밤 마농 퍼스트 카테고리 Category 1 좌석 30유로에 줄테니 오라고. 1분 쯤 고민했던것 같다. 그러나 보고싶던 오페라를 좋은 자리에서 보며 숙제까지 내팽개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내가 아니다. 바로 줄거리 출력해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바스티유로 향했다.

이번 마농은 오페라 나시오날 파리가 새롭게 연출해 올린 새 버전, 소위 '신상'으로 무대 곳곳에서 참신하고자 공을 들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압권은 가수들의 의상으로, 마농의 사촌오빠 레스코가 정말 위 그림 우측 빨간 삐죽 머리를 그대로 하고 나와 노래를 부른다. 빨강과 검정이 얼룩덜룩한 머리를 말미잘처럼 세우고 금속 장식을 찰그랑 찰그랑 달고나와 노래하는 바리톤이라니. 여기에 남성 성악가다운 실팍한 체격이 더해져 현실적인 퇴폐까지 묻어난다. 후에 찾아보니, 이미 여러 오페라단이 '모던한' 마농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클래식에 가까우면 클래식, 모던에 가까우면 모던으로 대부분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듯 했는데, 오페라 파리는 17세기 귀족풍 흰 가발 쓴 아저씨부터 갱스터 룩까지 등장시켜 마치 마스네의 시대와 2012년이 혼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여기에 고전적인 한편 장식적이고 화려한 마스네의 음악이 묘한 대비와 조화를 완성해 신scène 전체가 마치 '이것이 마농의 21세기적 인터프리테이션 interpretation이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마농 역은 마리안느 피셋Marianne Fiset이라는 작고 예쁘장한 소프라노가 맡았는데 어떤 매력이나 심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역할에 잘 어울렸고 젊은 용모에 비해 노래를 잘 했다. 반대로 상대역인 데 그리외Des Grieux 역의 장 프랑수아 보라스Jean-François Borras는 무대위에서 역삼각형으로 보일 정도로 어깨가 넓고 체격이 좋아 두 사람이 재미있는 대비를 이루었다. 데 그리외의 테너와 레스코의 바리톤이 무대 전반을 안정적으로 받쳐 주어 마농이 더욱 빛났던 것 같다. 프랑스 오페라이니 당연히 가사는 불어였지만 영화도 다 못알아듣는 비루한 불어로 오페라를 '듣고만 있을 수 는' 없다. 역시 무대 위 전광판에 가사가 제공되었는데, 프랑스 청중들과 불어 공연에 불어 자막을 올려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세시간이 조금 못되는 긴 공연이라 인터미션이 두 번이었는데, 매번 내 오른쪽 앞자리에 앉은 캐나다 마담이 내 오른쪽 뒷자리에 앉은 미국 마담에게 하는 이야기가 거슬려 공연과는 상관없이 한숨이 나왔다. 듣자니 이 캐나다 마담의 딸이 오늘의 주역 마농과 같은 음악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공연을 보러 온 모양이었는데, 소프라노가 캐나다 액센트가 있다는 둥, 아리아의 마지막 고음을 부르지 않아 답답했다는 둥 불이 켜지면 이야기를 시작해 다시 불이 꺼질때까지 그런 류의 비꼬기와 뽐내기를 멈추지 않아 피곤했다. 서울에 있을때부터 예체능계 아이를 둔 부모들 가운데 일부의 극성과 치졸함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여기라고 다른게 없다. 내 아이의 동료가 촉망받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은 건 알겠지만, 그 교양있고 싶어 안달난 아줌마들이 그런 감정을 주체 못하고 드러내는 게 매우 흉하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2012/02/16 03:46 2012/02/16 03:46

LA DAME DE PIQUE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3:11
LA DAME DE PIQUE
(스페이드의 여왕)
/TCHAIKOVSKI
OPERA BASTILLE
le 6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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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시즌,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과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는 러시아를 주제로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선보였다. 한 가지 큰 주제를 정해놓고 한 시즌 동안 관련 행사들을 다양하게 조직하고 체계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파리 문화계를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 많다. 곧 죽어도 주제sujet와 목차plan와 논리logique에 집착하는 교육의 영향인가 싶어 재미있기도 하고, 풍성한 레퍼토리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력이 감탄스럽기도 하다. 유럽 문화의 강점이랄까, 장기를 좀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는 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발레 음악에 비해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보고나면 한 곡 쯤은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오게 되는 - 귀에 잘 걸리는 - 아리아 위주의 이탈리아 오페라들과는 퍽 다르다. 서곡의 완성도가 높고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래서인지 선이 굵다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가수들의 노래가 약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오히려 가수의 체력이 염려될 정도로 강렬한, 혹은 비장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 장식과 연출이 굉장히 좋았다. 무대 위 공간을 나누어 다른 시공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야 무대 예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주는 연극적인 분위기와 분열의 이미지가 작품과 잘 어울렸다. 절제된 무대 장식이 주는 심플한 이미지와 톤 다운된 색감이 빚어내는 모던한 분위기도 시각적으로 멋있을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음악과 대비를 이루어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오페라에 어떤 종류의 문학성을 기대할 것은 아니고, 동명인 푸쉬킨의 원작과도 여러모로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작품이 흘러가는 동안 원작이 가진 성향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표현이 다를 뿐, 주인공의 광기와 나약함,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자니 마치 악보가 텍스트를 대신하고 있는 듯 했다.

돌아오는 길, 오뗄 드 빌Hotel de Ville 메트로 출구를 뛰어 올라가며 역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노름은 정신병이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2012/02/16 03:11 2012/02/16 03:11

RIGOLETTO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0:04
RIGOLETTO
/VERDI
OPERA BASTILLE
le 27 ja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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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에서 본 첫 오페라. 들어서는것 만으로도 순진한 마드모아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르니에의 화려함에 비해 1989년에 문을 연 현대식 극장 오페라 바스티유의 첫 인상은 조금 심심했다. 그러나 어지간한 티켓으로는 꼭 무대 어느 한 구석이 가려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가르니에와는 달리, 바스티유는 어지간한 티켓이면 시야에 무대가 다 들어오게끔 설계되어 가난한 학생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무려 '바스티유'에 설립된 극장다웠다. 브라보.

리골레토는 전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상연되는 인기 레퍼토리인데다가, 유명하다 못해 멜로디만 생각하면 식상함까지 느껴질 지경인 아리아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을 비롯해 질다역을 맡은 적이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덕분에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아리아가 여럿인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 'Le roi s'amuse (환락의 왕)'를 바탕으로 하는 비극이고, 먼저 찾아봤던 영상물이나 공연들도 주로 그런 비극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살린 연출이 많았는데, 파리 오페라는 그보다는 클래식하며 (아쉽게도) 선을 넘지 않는 점잖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여인들의 드레스가 스르륵 흘러 내리는 장면이나 붉은 쿠션이 층층이 쌓인 농염한 침대 신은 없었지만, 바리톤 제리코 루치치Zeljko Lucic는 '리골레토'의 리골레토에게 관객이 거는 기대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며 모두를 감동시켰다. 오페라 가수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놀라고, 나중에는 편안하게 그의 노래를 들었는데, 공연 후에 찾아보니 이미 수차례 리골레토로 분했고 '우리 시대 최고의 리골레토'라는 찬사를 듣는 양반이었다. 역시, 고수는 무지몽매한 이의 눈과 귀에도 뭔가 다르다. 우리의 질다 역은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가 맡았는데, 안정적인 - 질다의 'Caro nome(그리운 그 이름)'를 듣고 있으면, 늘 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주, 그 곡을 부르며 관객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소프라노는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 노래와 연기에 젊고 아름다운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리골레토와 질다에 비해 표트르 베찰라의 만토바 공작에게서는 큰 감흥을 얻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역시 그가 부르는 'La donna e mobile'을 들으며 그 멜로디가 식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샴페인을 한 잔 마실까 하고 바에 갔다가 한 무슈가 하겐다즈 바를 먹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아이스크림을 샀다. 하겐다즈 마카다미아 넛 브리틀Macadamia Nut Brittle 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아이스크림 속에 캐러멜 토피가 묻은 마카다미아 조각이 들어있어 끈적끈적하고 맛있었다.

2012/02/16 00:04 2012/02/1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