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가 드물어서, 비야 온나 비야 온나 마음 속으로 빌고 있던 차에 저녁에 비가 내렸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얼른 잠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좀 떨어진 찻집에 나가 한시간쯤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장발의 왜소한 아저씨가 대뜸 대리운전기사라며 말을 걸고는
TGIF 앞에서, 내가 영어를 몰라 그러는데 이게 VIPS 냐고 물으셨다.
아뇨, VIPS는 저기 저 건너편인데요, 간판이 녹색에 빨간색이에요.
저 만치를 가리키며 대답해드리자 아저씨는, 아 내가 영어를 몰라서.
하고 다시 한번 멋적어하시며 반쯤 망가진 우산을 들고 VIPS 쪽으로 뛰어가셨다.
그 길가에 멍하니 섰다가, 빨갛고 하얀 TGIF 간판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밀려 올라오는 짜증.
빌어먹을 것들이, 영어 밑에 한국말로 티.지.아이.프라이데이 라고 좀 써놓으면
간판쟁이가 간판값을 더 받기라도 하나.
지들이 한국에서 영업하지 미국에서 영업해?
친절이 뻗혀서 주문도 식탁에 매달려 받더만. 흥.
TGIF 뿐만이 아니다. 그 옆의 스탠다드 챠타드도.
아는 사람이나 알지, 모르는 사람이 알아볼 간판이냐고 그게.
누가 그거 보고 그 간판이 제일은행 간판인 줄 알까.
왜 대리운전기사 아저씨가 영어를 모르는게 멋적어 할 일인지 모르겠다.
영어야, 영어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할 줄 알면 되는거지.
영어를 아는 사람들은 모른다. 읽을 줄 모르는 알파벳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0%에 가까운 문맹률을 자랑하는 문자를 쓰는 한국에서,
한글을 쓰는 건 좀 틀려도 읽기는 너무나도 잘 읽는 한국인이
왜 굳이 다른나라, 다른 문자에 그렇게 쩔쩔매야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빈티내고 앉아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꼬라지.
빈한 티라는게 따로 있는게 아니다.
그 아저씨한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저씨, 영어같은거 몰라도 괜찮아요.
쟤네가 이상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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