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from Le Signet 2013/03/19 05:20

남편을 알기 전에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있었다. 애인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그때마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애인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그리고 호의와 경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를 받고 만족하지 않는 남성은 없다.
그래서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다섯 가지를 주고 남편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받았다. 고작 다섯 가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고작 그 다섯 가지.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리라. 우리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몸을 섞고, 낮이고 밤이고 말을 섞고,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더한 속박을 바라고 소유를 바라고 질투와 말다툼을 바랐다. 서로를 모조리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바라고 그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공허함도 바랐다.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감미로움을 바라는 것과 거의 같은 크기로,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고통을 바랐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혼했다. 서로 모든 것을 주고, 받은 것 전부를 맛보기 위해.
 --- pp.160-161, 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호의와 경의.


요즘 드문드문 스스로 묻는 물음에 대한 그녀 나름의 대답을 아직 사 읽지도 않은 책 소개 페이지에서 만났다.
무수한 폄하에도 늘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해온 내 애정에 대한 답가를 받은 듯 하다.  

2013/03/19 05:20 2013/03/19 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