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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itizen Kane, 1941 (시티즌 케인) / Orson Welles
DVD를 사놓고 보다 자고 보다 자기를 반복했었다. 이번에도 결국 보다 잤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추천하고 값이 매우 싸다는 이유로 주문해서 쟁여놓고 제대로 못 본지가 한 오백년이었는데, 이번에도 끝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보지 못했다.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라는 건 알겠지만 내게는 죽도록 재미가 없다. 언제나 'Great Gatsby'를 떠올리며 떨떠름한 기분으로 DVD를 꺼낸다. 그냥, 'Great Gatsby'를 다시 보는 게 내게는 더 나은 엔터테인먼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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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raserhead, 1977 (이레이저 헤드) / David Lynch
이제 '린치 필름'에는 미련이 없다. '이레이저 헤드'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신기하고, 흥미로운 영화였다. 사실 지금까지 '린치 필름'은 내게 늘 그런 인상을 남겼다. 어떻게 머릿 속에서 저런 게 나오나 싶은, 궁금해서 한번 쯤은 돈을 내고 극장에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판타지. 유랑 극단의 기괴하고 신기한 그림자 인형극을 보는 기분. '시티즌 케인'처럼 죽도록 졸렸던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재미라는 것이 없는 쪽도 아니었다.
하지만 데이빗 린치가 아직 살아서 충분히 엿볼만 하고, 엿보고 싶고, 점점 피곤해져도 아주 끊기는 아쉬운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시점에, 굳이 과거로 회귀해 그의 옛 작품을 더듬고 있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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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Vampires Suck, 2010 (뱀파이어 석) / Jason Friedberg, Aaron Seltzer
뮌헨 중앙역에서 우연히 'twilight'의 패러디 물 'nightlight'를 접한 이후로 두번째로 접한 트와일라잇 사가의 패러디 물이다. 일단 좀 진지한 감상으로 시작하자면 돈을 들여 이렇게 완성도 높은 패러디물을 제작해 자국 내에서 깔깔깔 충분히 소비한 후 푼돈이라도 이역만리 한국의 IPTV 사업자에게 그 컨텐츠를 팔수 있는 미국의 영화 산업이 부럽더라.
'Belle Goose'나 'Edwart Mullen'처럼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설정으로 웃기는 방식은 'nightlight'에서도 충분히 활용했지만 초반 이 영화를 끄지 못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때문이었다. 벨라 대신 '베카'로 분한 젠 프로스키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벨라' 연기를 사정없이 흉내내는 장면들은 텍스트 패러디에서는 얻기 힘든 종류의 웃음을 빵빵 터뜨리게 해 주었다.
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을 내 친구들이 안다면, 장담하건데 나는 적어도 백년어치의 비웃음을 사게 될 테지만, 트와일라잇이 좋다면 한 번 쯤 봐도 좋다. 이 블로그를 드나드는 트와일라잇 사가의 팬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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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at Pray Love, 2010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Ryan Murphy
원작이 상당한 베스트셀러였던 모양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읽었고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점에서 영화판 페이퍼 백이 나오기 전의, 귀여운 표지의 페이퍼백을 자주 봤지만 한 번 표지를 들춰본 적 조차 없다. 아마 'Pray'라는 단어에 대한 쓸데없는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소위 '자기 개발서' 범주에 들어가는 '논픽션을 가장한 픽션'인줄 알았다. 언제나 소설 섹션에 놓여있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던걸 보면 인간의 선입견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어쨌든 나는 원작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내가 원작 소설의 표지를 보고 가졌던 선입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도 초반 1/3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편은 매력적이겠지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못했다. 소스는 좋았을지 모르나 그 결과물은 킬링 타임용으로 쓰기에도 망설여지는 수준이다. 이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원작자와 감독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제 아무리 줄리아 로버츠라도,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도, 현실과 허구 사이를 잇는 통찰과 균형의 고리가 결여된 이야기에서는 빛나지 않는다.

2011/03/05 21:54 2011/03/05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