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남부 소파 감자 코으네의 신년맞이 필름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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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lephant Man, 1980 (엘리펀트 맨) / David Lynch
2007년 어느 주말 밤 아르테arté를 켜놓고 뜨뜻한 침대 속에서 보냈던 시간을 추억하며 다시 보기. 평소엔 '데이비드 린치' 하면 '환상'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을 품고 말게 하는 것은 - 그가 보여주는 환상 속에 고여있는 '추악함'의 이미지들이다. 당장 밟아 죽여버리고 싶은, 더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추악함. 인간성의 추악함을 비틀어 감흥을 빚어내곤 하는 린치의 솜씨에 늘 감탄하지만 그 추악함에 대한 린치의 태도를 고뇌라 불러야 할지 조소라 불러야 할지 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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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lvira Madigan, 1967 (엘비라 마디간) / Bo Widerberg
대사가 없으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이 흐르는 영화. 1889년에 일어난 덴마크 출신 줄타는 소녀 엘비라 마디간과 귀족 출신 스웨덴 장교 식스틴 스파르의 치정 자살 사건을 영화화한 스웨덴 작품이다. 보 비더버그 감독의 67년작이 가장 유명하지만 찾아보니 1943년에 먼저 영화화된 바 있다.
개봉 당시 뛰어난 영상미로 극찬 받았고 조명과 촬영 기법, 영상 연출 면에서 중요한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호텔 아주머니가 생선 포 뜨는 장면과 두 남녀 주인공이 거품을 내지 않은 새하얀 크림에 딸기를 담궈 먹던 장면, 그리고 첫 장면에 등장하는 안경 쓴 소녀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을 뿐이다. 그 외에 묘하게 연극적이었던 부분부분과 아름다운 자연광이 에릭 로메르의 '로맨스 Les amours d'Astrée et de Céladon'을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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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adies In Lavender, 2004 (라벤더의 연인들) / Charles Dance
이 영화를 보고 말도 못하게 영국이 그리워졌다. 시골 바닷가에 살고 있는 두 노자매 (매기 스미스, 주디 덴치)와, 어느날 그들 앞에 나타난 한 바이올리니스트 청년 (다니엘 브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자매의 잔잔한 일상과 청년이 그들의 마음에 불어넣은 훈풍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터치로 표현해낸 수작으로서, 주로 배우로 활동해온 잘스 댄스 감독의 안목과 재능에 크게 감탄했다.
다작에 유명한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전통이 강한 영국 중견배우 매기 스미스와 주디 덴치의 섬세하면서도 선이 살아있는 연기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다니엘 브륄이 분한 안드레아의 바이올린 연주 역시 아름다운 바닷가 풍광과 어우러져 영화에 맛을 더했다. 포리지가 등장하는 아침 식사며, 일상적인 티 타임과 저녁 식사 등 생활미가 녹아있는 씬들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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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vil Under The Sun, 1982 (백주의 악마) / Guy Hamilton
아가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옛날 추리물이니 21세기 추리물들의 알쏭달쏭함이나 징그러움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 하기만 한다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기본적으로 아드리아해의 호화로운 호텔을 배경으로 그 곳을 찾은 온갖 화려한 인물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지는데,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캐릭터 에르퀼 포아로 Hercule Poirot가 등장한다. 대화의 시작은 언제나 불어로 하며 노소를 불문하고 숙녀에게 상냥한 이 신사 아저씨는 정말이지 너무 귀엽다. 또 젊은 제인 버킨이 보여주는 화려한 스카프 패션을 비롯해 남녀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이 볼만하고 매기 스미스 같은 중견 배우들의 팽팽하던 시절(!)도 감상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메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2011/01/19 23:53 2011/01/19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