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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검색어 목록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동성폭행 사건을 다룬 글들을 읽으며 착잡한 마음을 돌릴 길이 없었다. 사건을 다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한 여론 조성이 있은 후, 그에 대한 반향으로 등장한 주요 일간지들의 기사들이란 시시한 인터넷 요약정리본 뿐이었다.
무려 1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이만큼 엄청난 사건이라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분명한 문제제기와 심층적인 분석을 담은 르포가 최소한 하나쯤은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무분별하고 공신력 없는 정보가 문제라지만, 나는 묻고 싶다. 대체 오늘날 신문은 어떤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가.

정의 옹호, 문화 건설이네, 바른 여론을 선도하네 뱉은 말 주워 담을 수 없다면 제발 읽을만 한 기사를 써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요리사는 요리로, 통역사는 통역으로, 기자는 기사로 자신의 가치를 내보인다. 나는 진정 가치있고, 시사하는 바가 있는 기사를 읽고 싶다.
개인적으로 들었을때 괴로웠던 말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기자 신분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용도를 생각하세요.' 차갑지만, 직업인에게 꼭 필요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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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접하고, 예전에 읽은 공지영 작가와 송해성 영화감독의 대담 가운데 일부가 떠올랐다.


송해성:
그런 얘기도 많아요. 소설이 됐건 영화가 됐건,
         여자가 상처를 받으면 왜 항상 성폭행이냐 하는 말.

공지영: 아니, 여자들은 돈 떼먹는다고 그렇게 상처받지 않아요. (웃음)

다시 찾아보니 씨네 21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관련해 낸 기사 가운데 일부였다. (기사 전문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1588 에서 볼 수 있다.)

너무 얄미운 소리를 해서 깍쟁이 같을 때도 있는 공지영 작가지만, 이제와 저 말 한마디만큼은 정확하게 날린 잽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성폭행이냐'라는 물음에 담긴 성적 차별에 대한 몰이해를 '여자가 상처를 받으면 항상....'에 담긴 전체적 평가절하와 정확히 같은 각도에서 은근한 돌려뒤차기 화법으로 받아쳤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E.M. 포스터처럼 소년기에 다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엄청난 경험을 하는 남성들이 소수라는 사실은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런만큼 남성들은 성별로 인한 억압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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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또 나는 바란다. 남성이고 여성이고, 사람은 누구나 이 사회에 대해 다 모르는, 혹은 잘 못 알고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언론매체는 그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다. 다 커서 공부하기 싫고 발로 뛰기 귀찮은 마음 백번 이해하지만 그래도 밥을 버는 일이라면, 기자들이여, 일간지든 주간지든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읽을 만 한 기사로 각자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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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기 전에, 이 세상을 네발로 살아가는 개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알려둔다.
아래의 개는 꼬리뼈가 퇴화하고 직립보행을 하는 개다.

그 개가 고등 법원으로부터 12년 형을 확정 받았다는 내용과 그를 규탄하는 대통령 및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담은 기사를 읽고 한가지 생각을 달리 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가중처벌대상이다.
음주 상태에서 저지른 폭행 및 여타범죄들 역시 심신 미약상태를 고려한 감형대상이 아니라, 가중처벌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2009/09/30 01:02 2009/09/30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