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에 해당되는 글 4건

  1. MANON 2012/02/16
  2. ORPHÉE ET EURYDICE (2) 2012/02/16
  3. LA DAME DE PIQUE 2012/02/16
  4. RIGOLETTO 2012/02/16

MANON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3:46
MANON
/MASSENET
OPÉRA BASTILLE
le 13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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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있으니 이왕이면 프랑스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봐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때, 이미 '마농'의 티켓은 수 주 전에 오픈되어 100 유로 이하의 좌석은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를 예매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아쉬움도 잊어가던 어느 저녁, 번역 숙제가 싫어 책상 앞에서 몸을 비비 꼬고 앉아있는 내게 오페라 파리가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오늘 밤 마농 퍼스트 카테고리 Category 1 좌석 30유로에 줄테니 오라고. 1분 쯤 고민했던것 같다. 그러나 보고싶던 오페라를 좋은 자리에서 보며 숙제까지 내팽개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내가 아니다. 바로 줄거리 출력해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바스티유로 향했다.

이번 마농은 오페라 나시오날 파리가 새롭게 연출해 올린 새 버전, 소위 '신상'으로 무대 곳곳에서 참신하고자 공을 들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압권은 가수들의 의상으로, 마농의 사촌오빠 레스코가 정말 위 그림 우측 빨간 삐죽 머리를 그대로 하고 나와 노래를 부른다. 빨강과 검정이 얼룩덜룩한 머리를 말미잘처럼 세우고 금속 장식을 찰그랑 찰그랑 달고나와 노래하는 바리톤이라니. 여기에 남성 성악가다운 실팍한 체격이 더해져 현실적인 퇴폐까지 묻어난다. 후에 찾아보니, 이미 여러 오페라단이 '모던한' 마농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클래식에 가까우면 클래식, 모던에 가까우면 모던으로 대부분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듯 했는데, 오페라 파리는 17세기 귀족풍 흰 가발 쓴 아저씨부터 갱스터 룩까지 등장시켜 마치 마스네의 시대와 2012년이 혼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여기에 고전적인 한편 장식적이고 화려한 마스네의 음악이 묘한 대비와 조화를 완성해 신scène 전체가 마치 '이것이 마농의 21세기적 인터프리테이션 interpretation이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마농 역은 마리안느 피셋Marianne Fiset이라는 작고 예쁘장한 소프라노가 맡았는데 어떤 매력이나 심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역할에 잘 어울렸고 젊은 용모에 비해 노래를 잘 했다. 반대로 상대역인 데 그리외Des Grieux 역의 장 프랑수아 보라스Jean-François Borras는 무대위에서 역삼각형으로 보일 정도로 어깨가 넓고 체격이 좋아 두 사람이 재미있는 대비를 이루었다. 데 그리외의 테너와 레스코의 바리톤이 무대 전반을 안정적으로 받쳐 주어 마농이 더욱 빛났던 것 같다. 프랑스 오페라이니 당연히 가사는 불어였지만 영화도 다 못알아듣는 비루한 불어로 오페라를 '듣고만 있을 수 는' 없다. 역시 무대 위 전광판에 가사가 제공되었는데, 프랑스 청중들과 불어 공연에 불어 자막을 올려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세시간이 조금 못되는 긴 공연이라 인터미션이 두 번이었는데, 매번 내 오른쪽 앞자리에 앉은 캐나다 마담이 내 오른쪽 뒷자리에 앉은 미국 마담에게 하는 이야기가 거슬려 공연과는 상관없이 한숨이 나왔다. 듣자니 이 캐나다 마담의 딸이 오늘의 주역 마농과 같은 음악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공연을 보러 온 모양이었는데, 소프라노가 캐나다 액센트가 있다는 둥, 아리아의 마지막 고음을 부르지 않아 답답했다는 둥 불이 켜지면 이야기를 시작해 다시 불이 꺼질때까지 그런 류의 비꼬기와 뽐내기를 멈추지 않아 피곤했다. 서울에 있을때부터 예체능계 아이를 둔 부모들 가운데 일부의 극성과 치졸함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여기라고 다른게 없다. 내 아이의 동료가 촉망받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은 건 알겠지만, 그 교양있고 싶어 안달난 아줌마들이 그런 감정을 주체 못하고 드러내는 게 매우 흉하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2012/02/16 03:46 2012/02/16 03:46

ORPHÉE ET EURYDICE
/CHRISTOPH W. GLUCK
*OP
ÉRA DANSÉ DE PINA BAUSCH
OPÉRA GARNIER
le 12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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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두시 반의 오페라 가르니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두시간쯤 걸려 대 브런치를 먹고서 가볍게 치장하고 면바지에 얇은 스웨터에 세미 정장 재킷을 입은 남편 손을 잡고 가르니에에 걸어오면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내가 그랬다는게 아니고...)

이번 시즌에 본 공연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다. 다시 태어나면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 날의 댄서들은 마치 나와 다른 종처럼 보였다. 고도로 다듬어지고 훈련된 인간의 육체는 보석보다 아름답다. 게다가 그 움직임이란!

슬프고 강렬한 1막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아름답지 않고 환상적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보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표를 알아봤는데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오페라와 춤이 결합된 형태의 공연이었기 때문에 오르페와 에우리디스를 연기하는 댄서와 가수가 각각 이었는데, 에우리디스를 노래하는 가수가 한국인이었다. 오르페에 조금 밀리는 듯 해도 소리가 곱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방가르드하면서도 아름답고 내용까지 좋은 무대의 일원으로 서 있는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이날 객석에는 마치 마레지구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사진에서 그대로 오려 온 듯한 남남 커플들이 많았다. 그들은 분명히 늦잠을 자고 일어나 파트너와 함께 근사한 점심식사를 하고 달콤한 기분으로 가르니에에 도착해 이렇게 아름다운 눈요기를 하고 있는거겠지. 생각하니 부러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급기야는 내 마음속에 눈 사람을 만들었다.  



 

2012/02/16 03:43 2012/02/16 03:43

LA DAME DE PIQUE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3:11
LA DAME DE PIQUE
(스페이드의 여왕)
/TCHAIKOVSKI
OPERA BASTILLE
le 6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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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시즌,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과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는 러시아를 주제로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선보였다. 한 가지 큰 주제를 정해놓고 한 시즌 동안 관련 행사들을 다양하게 조직하고 체계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파리 문화계를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 많다. 곧 죽어도 주제sujet와 목차plan와 논리logique에 집착하는 교육의 영향인가 싶어 재미있기도 하고, 풍성한 레퍼토리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력이 감탄스럽기도 하다. 유럽 문화의 강점이랄까, 장기를 좀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는 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발레 음악에 비해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보고나면 한 곡 쯤은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오게 되는 - 귀에 잘 걸리는 - 아리아 위주의 이탈리아 오페라들과는 퍽 다르다. 서곡의 완성도가 높고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래서인지 선이 굵다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가수들의 노래가 약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오히려 가수의 체력이 염려될 정도로 강렬한, 혹은 비장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 장식과 연출이 굉장히 좋았다. 무대 위 공간을 나누어 다른 시공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야 무대 예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주는 연극적인 분위기와 분열의 이미지가 작품과 잘 어울렸다. 절제된 무대 장식이 주는 심플한 이미지와 톤 다운된 색감이 빚어내는 모던한 분위기도 시각적으로 멋있을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음악과 대비를 이루어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오페라에 어떤 종류의 문학성을 기대할 것은 아니고, 동명인 푸쉬킨의 원작과도 여러모로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작품이 흘러가는 동안 원작이 가진 성향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표현이 다를 뿐, 주인공의 광기와 나약함,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자니 마치 악보가 텍스트를 대신하고 있는 듯 했다.

돌아오는 길, 오뗄 드 빌Hotel de Ville 메트로 출구를 뛰어 올라가며 역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노름은 정신병이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2012/02/16 03:11 2012/02/16 03:11

RIGOLETTO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0:04
RIGOLETTO
/VERDI
OPERA BASTILLE
le 27 ja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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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에서 본 첫 오페라. 들어서는것 만으로도 순진한 마드모아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르니에의 화려함에 비해 1989년에 문을 연 현대식 극장 오페라 바스티유의 첫 인상은 조금 심심했다. 그러나 어지간한 티켓으로는 꼭 무대 어느 한 구석이 가려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가르니에와는 달리, 바스티유는 어지간한 티켓이면 시야에 무대가 다 들어오게끔 설계되어 가난한 학생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무려 '바스티유'에 설립된 극장다웠다. 브라보.

리골레토는 전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상연되는 인기 레퍼토리인데다가, 유명하다 못해 멜로디만 생각하면 식상함까지 느껴질 지경인 아리아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을 비롯해 질다역을 맡은 적이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덕분에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아리아가 여럿인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 'Le roi s'amuse (환락의 왕)'를 바탕으로 하는 비극이고, 먼저 찾아봤던 영상물이나 공연들도 주로 그런 비극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살린 연출이 많았는데, 파리 오페라는 그보다는 클래식하며 (아쉽게도) 선을 넘지 않는 점잖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여인들의 드레스가 스르륵 흘러 내리는 장면이나 붉은 쿠션이 층층이 쌓인 농염한 침대 신은 없었지만, 바리톤 제리코 루치치Zeljko Lucic는 '리골레토'의 리골레토에게 관객이 거는 기대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며 모두를 감동시켰다. 오페라 가수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놀라고, 나중에는 편안하게 그의 노래를 들었는데, 공연 후에 찾아보니 이미 수차례 리골레토로 분했고 '우리 시대 최고의 리골레토'라는 찬사를 듣는 양반이었다. 역시, 고수는 무지몽매한 이의 눈과 귀에도 뭔가 다르다. 우리의 질다 역은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가 맡았는데, 안정적인 - 질다의 'Caro nome(그리운 그 이름)'를 듣고 있으면, 늘 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주, 그 곡을 부르며 관객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소프라노는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 노래와 연기에 젊고 아름다운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리골레토와 질다에 비해 표트르 베찰라의 만토바 공작에게서는 큰 감흥을 얻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역시 그가 부르는 'La donna e mobile'을 들으며 그 멜로디가 식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샴페인을 한 잔 마실까 하고 바에 갔다가 한 무슈가 하겐다즈 바를 먹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아이스크림을 샀다. 하겐다즈 마카다미아 넛 브리틀Macadamia Nut Brittle 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아이스크림 속에 캐러멜 토피가 묻은 마카다미아 조각이 들어있어 끈적끈적하고 맛있었다.

2012/02/16 00:04 2012/02/1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