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에 해당되는 글 5건

  1. 잡동사니 (5) 2013/03/19
  2. L'Anneau du Nibelung - La Walkyrie (4) 2013/03/12
  3. 2013 LND (2) 2013/03/10
  4. La Buveuse d’Absinthe (2) 2013/03/02
  5. Vin chaud 2013/03/01

잡동사니

from Le Signet 2013/03/19 05:20

남편을 알기 전에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있었다. 애인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다. 그때마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애인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그리고 호의와 경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를 받고 만족하지 않는 남성은 없다.
그래서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다섯 가지를 주고 남편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받았다. 고작 다섯 가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고작 그 다섯 가지. 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리라. 우리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몸을 섞고, 낮이고 밤이고 말을 섞고,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아 더한 속박을 바라고 소유를 바라고 질투와 말다툼을 바랐다. 서로를 모조리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바라고 그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공허함도 바랐다.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감미로움을 바라는 것과 거의 같은 크기로, 그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고통을 바랐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혼했다. 서로 모든 것을 주고, 받은 것 전부를 맛보기 위해.
 --- pp.160-161, 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호의와 경의.


요즘 드문드문 스스로 묻는 물음에 대한 그녀 나름의 대답을 아직 사 읽지도 않은 책 소개 페이지에서 만났다.
무수한 폄하에도 늘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해온 내 애정에 대한 답가를 받은 듯 하다.  

2013/03/19 05:20 2013/03/1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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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L'Anneau de Nibelungen - La Walkyrie /R. Wagner
2013 Opera Bastille




'라인의 황금'을 보고 난 감상이 실망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인지, 이어지는 '발퀴레'에 대한 설렘은 반감에 반감을 거듭, 급기야 티켓을 끊고 나면 공연 전까지 의식적으로 몇 번은 하는 '귀에 붙이기(전체 감상)'는 커녕 1막만 겨우 찾아 듣고 마는 무성의로 한 달을 보냈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 일정이 잡히면 열심히 떼창 준비를 하며 복습을 하듯, 장르를 불문하고 공연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준비라는 게 필요하다. 게다가 나는 바그네리안을 자청할 수 있는 수준도 못 되기 때문에 그런 밑준비 없이 가서는 못 따라가고 잠들게 뻔 했는데도 영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바그너의 음악극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통상 쉽지 않다, 입문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마주하게 된다. 나도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일단 오페라 팬이라면 상대적으로 익숙할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 (레치타티보 + 아리아)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극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강 약 중강 약 하는 식으로 조절하게 되는 집중의 리듬 타기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 게다가 길기는 또 오지게 길어서, '라인의 황금'은 중간 휴식없이 두시간 반을 내리 달리고, '발키리'는 순 공연 시간만 세 시간 사십 오 분이다. 체력 좋은 독일 작곡가 답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바그너에 일단 덤비고 보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리아나 레치타티보가 없는 대신, 그의 음악극에는 특정 인물이나 장면을 상징하는 유도동기가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 배경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음악적 장치가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특정 선율을 기억하고 있으면 극을 따라가는데 도움이 되고, 특히 '발퀴레'는 많은 영화 감독, 음악 감독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던지라 직간접적인 매체 노출이 많았다. 의외로 '들으면 아는' 대목이 많은 작품인 것이다.
 
때문에 힘들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다. 네시간에 달하는 공연 도중에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졸리기도 했지만 나의 무성의함에 비하면 무척 친절한 공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전편에서 느낀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연출이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괜찮았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다. 더 휘황찬란한 눈요기를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직 전 작품을 다 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운을 떼기는 조심스럽지만, 내가 본 링사이클 절반과 다른 작품까지 통틀어 느낀 바, 대부분의 경우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의 연출은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이지만 '화려하게, 더 화려하게 spectacular! spectacular!'를 지향하는 쪽은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파리의 오페라 신은 그 이미지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도, 사치스럽지도 않다. 유럽 경기 침체가 당장은 문제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예산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문화계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는 몇 안되는 국가들 가운데 형님 격이고 어느 정도 장사도 잘 하는 편이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각종 매체를 통해 자주 조명하는 것 처럼 문화산업과 수익성을 기반으로 한 모델이 아니다. 현대에 지어진 오페라 바스티유의 모토가 오페라의 대중화였듯 파리의 문화 예술계는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최상의 혜택'이 아닌 '더 많은 예술애호가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향'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이곳에도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과 그들의 경제력 간의 끊을수 없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허나 앞서 말한 프랑스 예술계의 모토는 더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을 끌어 안는 원동력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한풀만 벗겨보면, 프랑스 문화계 종사자들은 언제나 예산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성공에 성공을 거둔 호퍼의 그랑팔레 전시의 이면에는 예산확보를 위한 대관사업과 작품 대여료 인하를 위한 눈물겨운 네고가 있었다. 매 두 달에 한번 쯤 오페라 나시오날에서는 업커밍 공연들의 할인 혜택을 적은 우편물을 보내온다. 순수한 소비자인 나는 모른다. 나는 언제나 돈을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내 사치스러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예술소비와 더, 더, 더를 외치는 일은 관둘 때가 되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한다고 믿는 예술과, 그 예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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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2 21:32 2013/03/12 21:32

2013 LND

from Bon voyage! 2013/03/10 08:59


2013 03 04 - 2013 03 08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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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 wok / L'Eau à la bouche/Dishoom
The Wolseley/Claridge's
Ottolenghi/The Orangery/Tom Aikens/Flat White
Monmouth coffee/The Refinery
St. John bread&wine /Peyton and Byrne

Harrod's/Fortnum & Mason/Borough Market/Whole food/Daylesford Organic/Selfridge's/Mark's&Spencer

Tate Britain - Retrospective Schwitters
Saatchi - Gaiety is the most outstanding feature of Soviet Union
Tate modern- Restospective Liechtenstein, A bigger 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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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기쁘게 만들었던, 북역 전광판에 떠 있던 St. Pancras international. 고마웠던 마중. 브릭 레인에서 브로드웨이 마켓까지 긴 산책, L'eau à la bouche와 첫 플랏 화이트. 치즈하면 프랑스인가요, 앙드루에 프로마주리. 차이만큼은 맛있었던 Dishoom. 담배 연기.
 
여전히 멋진 남자들이 미팅을 하고 아침을 먹던 The Wolseley. 슈비터스와의 첫 만남 그리고 영국 회화, 테이트 브리튼. 클라리지스의 일등 스콘과 백점짜리 마리아주를 보여준 마르코폴로 젤리. 포트넘 앤 메이슨, 내 평생의 밀크티. 좋아하는 서점 Hatchard's. 작년에도, 올해도 별로 달갑지는 않았던 옥스포드 스트릿 혼자 걷기. 떠들썩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외로웠던 밤.

깔끔한 마감과 디스플레이를 자랑하던 오또렝기. 평온해 아름다웠던 아침 나절 켄징턴 가든, The Orangerie. 편안하고도 즐거웠던 대화. 항상 길을 잃게 되는 사우스 켄징턴 역 앞. 괜찮았던 서비스, 그러나 기대에는 못미쳤던 식사 그래서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았던 Tom Aikens. 런던에는 Sushi des artistes 라는, 희한한 이름의 스시집이 있더군요. 사랑했던,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사치. 흠뻑 좋았던 전시. 아, 사치, 사치, 오오 사치. 오일머니 아로마 진동하는 나이트브릿지와 해로즈. 그럼에도 모두를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드는 마술같은 푸드홀. 아스파라거스에 시소 잎까지 얹은 남다른 나시고랭. 늦게 찾아간 소호에서 마신 두 번째 플랏 화이트.

좋은 날씨 땡,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찾아간 보로우 몬머스, 전 직원이 패셔너블한 그 곳. 이번엔 필터커피. 섬세한 맛은 없던, 그러나 그 나름대로 좋았던 커피 한 잔. 생각보다 투어리스틱했던 보로우 마켓. 비싸던 프랑스 토끼와 덜 비싸던 영국 토끼. 뜨거운 허니 레몬 진저, 크로아티아 무화과 케이크, 역시 프랑스 치즈, 루쿰 사탕, 포르투갈 나따 그리고 허니 콤브. 사년 만의, 들어가는 순간 너무 반가워 숨이 탁 막히던 테이트 모던. 다시 만난 세계, 리히텐 슈타인 회고전. 흥미로웠던 기획, A bigger splash. 흐린 날씨, 유리 창밖으로 보이던 템즈강과 생 폴 성당. 런던에서 다시 만난 홀푸드 땅콩버터 머신. 없는 허니로스티드피넛 대신 아쉬운대로 솔티드 피넛. 노팅힐 밤 산책, 데일스포드 오가닉.

St. John의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 런던에선 잊지 않는 시나본 시나몬 롤 한 박스. 마지막 날은 갤러리 대신 백화점 셀프릿지스. 한국 백화점가와 별 반 다를 바 없는 값에 사들인, 그래도 예뻐 좋은 첫 로열 앨버트. 다음에는 꼭 티세트를. 로컬 구르망들을 위한 실용적인 구성의 셀프릿지스 푸드 홀. 그곳에서 나를 실소하게 한 트러플 가격표. 가던 발길을 붙잡던 장미 향. 무거웠던 캐리어. 비와 교통체증. 케이크가 아기자기 페이튼 앤 바이른. 훅 반한 엘더플라워 앤 진저 티. 드디어 찾은 밀리어네어스 쇼트 브레드. 또 한 번의 반가운 대화, 고마웠던 따뜻했던 배웅. 그리고 다시 나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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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여섯 상자, 네 깡통.
전시도록 다섯 권, 카툰 북 한 권, 읽고 싶은 대로 골라담은 아홉 권 도합 열 다섯 권.
초콜릿 두 상자, 한 판.
터키쉬 커피 한 깡통, 한 갑.
유기농 설탕 백 오십 그람.
과일 잼 큰 한 병 작은 두 병.
시나본 시나몬 롤 한 박스.
찻 잔 다섯 조.
스코티쉬 퍼지 두 상자.
허니 콤브 한 봉지.
꽃무늬 시장 가방 하나, 면 가방 둘.
커피 한 봉지.
말린 망고 한 봉지.
꽃무늬 우산 하나.
엘더 플라워 앤 구즈베리 향수 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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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키친 원해요


 
2013/03/10 08:59 2013/03/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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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uveuse d’Absinthe

from Tableaux 2013/03/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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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1881-1973)
La Buveuse d’Absinthe, 1901
Huile sur toile - 65,5 x 51 cm
Collection particulière

 
단박에, 훅 반했다.
저 압생트의 초록에.

저 멋진 그림을 오르세에 빌려준 이는 누구일까?

춥고 흐렸던 날
반쯤 닫힌 미술관에서 나를 부른, 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림.  



2013/03/02 09:27 2013/03/02 09:27

Vin chaud

from La Table 2013/03/01 05:57

마시다 남은 꼬뜨 드 뉘Côte de Nuits 반 병에 향신료 몇 가지,
설탕 대신 주인 아주머니에게 얻은 씁쓸한 오렌지orange amer 잼을 넣고 뱅 쇼vin chaud를 끓였다.
살짝 졸아든 맛이 혀 끝에선 묵직하고 뒤로는 달큰하다.
엊그제 길거리에서 산 양 젖 치즈도 조금씩 잘라 먹는다.

좋은 밤이다.




2013/03/01 05:57 2013/03/01 0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