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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약속도 없는데 나가겠다고 부지런을 떨었다. 몇달 전에 갔었던 지누스까페에 가고 싶기도 하고, 책구경을 나가고 싶기도 하고. 아무튼, 놀러 나가고 싶었다. 사실은 어제부터.

집 밖에만 나가면 오만가지 찻집을 물망에 올려두고 골라가는 재미가 있는 홍대와는 대조적으로 광주 집 근처는 무지무지 평화롭다 못해 조금만 걸어나가면 아직도 논이 있고, 여름이면 연꽃이 물 밖으로 밀려 나올 지경으로 피는 방죽이 있다. 우리 집이 있는 북구가 광주에서도 인구밀도가 적은 곳이라 좀 시골스러운것도 사실이지만 그래서 좋은 점이 많다 :)

결과부터 이야기 하자면, 나의 무작정 외출 계획은 내일(날씨가 좋으면)로 밀리고 말았다. 집청소나 좀 하라는 엄마의 핀잔 -결국 청소는 안했다 -에 자꾸 꼬이는 여행스케쥴과 전혀 손님을 받아 여행을 보내려는 의지가 없는 인X파크 여행사 여직원까지 가세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집에 박혀 화분 사진이나 찍고 마침 교보문고에 주문했던 책을 받아 밀키 사탕을 빨며 뒤적거리는 것으로 오후시간을 때웠다.

아예 부지런히 책이며 노트북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갔으면, 아주 책을 미친듯이 읽었으면,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사를 뽑아 공부라도 좀 했으면, 카레를 만들거나 쿠키라도 구웠으면 오늘 하루가 이렇게 무료하진 않았을텐데. 어중간한 게으름은 나의 주적이다. 공부를 하는것도, 책을 보는것도, 노는것도 아니면서 야금야금 시간을 다 잡아먹는다. 어릴때는 종일 TV를 보기도 했데, 혼자 살면서 TV를 아예 들이지 않았더니 이젠 그것도 재미없다. 대신 심심하다는 이유로 시심사심 간식을 먹는다. 사탕을 먹다가 지겨우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것도 아님 동생이 남긴 과자를 먹고, 그러다가 다섯시가 되자 저녁먹을 시간이라며 밥을 먹는다. 오늘은 특별히 예전에 집에 오셨던 요리사 아주머니가 빌려가셨던 내 우산을 가져다 주시며 손수 만드신 뽕잎차를 챙겨다 주셔서 밥숟가락 빼자마자 차를 끓였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랍지도 않겠지만 내가 좀 먹는다.

이렇게 한 일이라고는 없이 하루가 간다. TV를 보지 않을 뿐 하루종일 소파에 파묻혀 혼자 놀았다. 이미 백수고, 나는 집에서 유유자적하는 걸 무척이나 즐기는 사람이지만 매일 이렇게 살면 우울증이나 각종 다양한 정신병을 체험할 수 있겠구나 싶다. 게다가 종일 단걸 빨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고도 비만이나 당뇨의 위험도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일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는 한 꼭 놀러 나가겠다고. 내일도 오늘처럼 햇살이 쏟아지는 포근한 겨울 날이었으면 좋겠다.


2007/12/26 19:48 2007/12/26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