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ize

from Bon voyage! 2010/07/09 23:38

Boeuf Bourgignon, Peach Melba
뵈프 부르기뇽, 피치 멜바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아르누보 풍 동그란 조명도, 옷가지와 짐을 올려놓는 금색 봉 선반도, 평범한 음식 맛도,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 위에 깐 종이 위에 계산서를 써주는 서버 아저씨도, 그리고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올 즈음 레스토랑 라벨이 다닥다닥 붙은 식당 문 앞에서부터 파사주 입구를 끼고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손님들의 줄도. 이번에도 나는 동양인의 빠른 식사시간에 대해 생각하며 식당을 나섰다.
사실 다시 찾게 될 줄 몰랐다. 어쩌다보니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이 아는 -나 뿐만 아니라 파리 시민 더하기 여행객들의 절반은 그 존재를 알고있을 - 식당이었고 우리는 더 나은 어딘가를 찾아 나설 생각이 없었다. 둘 뿐이었기 때문에 4인용 테이블에 합석해야 했다. 옆자리에는 대학에서 만난 아저씨와 아가씨가 데이트 중이었다. 슈크루트와 소세지, 생선 요리가 그들의 저녁식사였다. 무려 두 계절이 지난 지금까지 생판 모르는 합석 커플의 저녁메뉴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보다 먼저 온 그 커플의 식사가 훨씬 늦게 나왔고, 아가씨가 주문한 생선요리의 뼈를 서버아저씨가 테이블 옆에서 매우 정성스럽게 발라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뼈를 발라 준것 까지는 매우 고마워했으나 다른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기분이 상한 커플은 서버아저씨의 디저트 권유를 거절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전채로 버터 소세지를 나눠먹고 각자 뵈프 부르기뇽과 스텍 아셰를 주문했다. 뵈프 부프기뇽을 보는 순간 우리가 고기, 고기, 고기만을 주문했다는 점을 깨닿고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다행히 동생은 나온 고기를 모두 먹었고 맛있다고 덧붙이기까지 하여 나는 안심하고 감탄했다.
디저트로 시킨 라즈베리 쿨리를 얹은 파 브루통 비슷한 과자는 단순히 맛이 없었지만 통조림 복숭아를 얹은 피치 멜바 앞에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섭섭하고 서글프고 아쉬웠지만 달긴 달았다. 단순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단순한 통조림 복숭아.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건 카르트 도르 carte d'or 일까 아니면 매그넘일까 생각했다. 둘 다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에스코피에가 넬리 멜바를 위해 만들었다는 그 디저트는 수많은 바리에이션을 거쳐 2010년, 피치멜바를 피치멜바일 수 있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와 최후의 패턴으로 내 앞에 놓였다. 그것을 피치멜바 미니멀리즘이라고 해야 할지, 대중 피치멜바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샤르티에, 오페라
Chartier,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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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9 23:38 2010/07/09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