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ze

from Bon voyage! 2010/06/07 22:24

my fantasy
공상

어떤 영화에서 였더라, 높은 곳에서 파리 전체를 조망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본 적이 있다. 해질 무렵 보다는 이른 아침. 아침 노을 빛 안개가 엷개 낀 그 시퀀스 속 파리의 얼굴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나른히 창 밖을 바라보는 여자의 부은 살구빛 입술처럼 자꾸만 눈이 가고, 자꾸만 보고싶어지는 모습이었다. 낮게 깔린 옛날 건물들 이쪽 끝이 몽마르트고, 저쪽 끝에 에펠이 있다. 그리고 살짝 도드라진 퐁피두, 몽파르나스.
그렇게 조금 떨어져서 찬찬히 바라보고 있자면, 떠오르는 형용사는 딱 하나다. fantastique. 어째서 환상적이다, 공상적이군, 몽환적이네, 같은 여러 모국어 표현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걸까, 생각해 봤지만 잘 모르겠다. 모국어와 두 외국어가 팔 대 일 대 일 정도 되는 비율로 연결, 혹은 단절되어 있는 사고 회로의 작용일까, 아니면 순전히 개인적인 언어 사용의 잔재일까.  
그날, 퐁피두 꼭대기층에서는 피에르 술라주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어마어마하고 끝없이 까만 술라주의 울트라 검정에 시커멓게 질린 얼굴로 전시장을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전, 조금 빈둥거렸다.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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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22:24 2010/06/07 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