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물망에 걸려 몸을 꼬았다 풀었다 하는' 물고기라는 구문을 읽고 내가 떠올린 물고기의 움직임과
'그물망에 걸려 몸을 퍼덕거리는' 물고기의 움직임은 달랐다.
현대 문학에서 문학적 파격을 허용하는 장르는 이제 시, 운문 문학에 국한 되지 않는다.
비문이 아닌 한에야 '꼬았다 풀었다'와 '퍼덕거리는' 이라는 표현은
작가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표현 망 안에 속하지 않을까?
매끄러운 문장이 지니는 세련된 아름다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세상 모든 작가들이 매끄러운 문장을 구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된 목소리로 '악문'들을 이어 불편한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도 분명 글을 쓰고,
어색하고 불편하되 재능이 담긴 글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그 글을 세상에 내놓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 사포질이 덜 된 거친 이야기는 문학 출판사의 곁 가지에서 그에 꼭 맞는 자리를 찾아
세상에 나왔고, 열심히 한 마케팅과 이름 값 덕에 괜찮은 판매부수를 올렸을 뿐이다.
2
콘래드는 폴란드 인이지만 스무살에 배운 선원 영어로 로드짐을 썼고
이오네스코는 루마니아인이지만 배운 불어로 대머리 여가수를 썼고
아일랜드 출신의 사무엘 베케트는 영어와 불어로 작품들을 썼다.
대가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어대지 않더라도
스위스인 데이비드 조페티는 배워 습득한 일어로 '처음 온 손님'이라는 소설을 썼고
그 작품은 괜찮은 반향을 얻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콘래드의 문장은 완벽하지 않다고 배웠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다시 없다.
예술로서의 문학은 작가가 베틀에 앉아 문장이라는 실낱을 종횡으로 엮어 짠 비단이다.
비문과 악문은 분명 엉킨 실타래요 코를 빠트린 뜨게질감이다.
잘 짠 옷감과 넝마를 구분하는 것은 문학하는 사람의 기본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큰 그림과 그 속에 들어있는 진정성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숨어 꿈틀대는 재능의 기미를 대중은 밟고 스치더라도
그것을 알아보고 돋울줄 아는 것이 글월을 배워 글월로 밥을 버는 사람들의 소임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기성 작가들과 평론가들은 젊고 까끌까끌한 문장을 향해 덜 히스테릭하고 더 진지한 태도를 보여줄 여력은 없는 모양이다. 젊은 재능 향해 짖어대는 늙은 히스테리.
좀 더 분명한 '악문'을 끄집어내 그런 문장이 나와서는 안되는 이유를 일러주었더라면 반가웠으련만.
더군다나 총대를 맸으면 시원하게 쏘고 말 것이지 '제도권 문학의 화끈한 고객 만족의 부재'를 들먹이며 한 발 빼는 자세는 또 뭔가.
문학의 고객만족이라. 그것도 화끈한 고객 만족.
분발하라 압구정 작가들이여.
3
나 역시, 건투를 빈다.
그에게도 내게도.
일기장, 블로그에나 써야 마땅한 어설픈 칼럼을 쓰는 이땅의 모든 평론가들을
시원하게 할퀴어 줄 수 있는 글을 써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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