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몇일 전
그가 말했다.
'사랑하면 그냥 동거 하면 되잖아요. 결혼할 필요 없잖아요.'
좀 더 사적인 자리였다면,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말 속에 담긴 그의 생각을 좀 더 정확히 알기 위해
몇가지 질문을 던지거나, 좀 더 자세히 풀어 이야기 해 줄것을 청했을 것이다.
2 ; 사실혼 관계
결혼이라는 남녀관계의 핵심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개인적, 사회적 삶을 공유하는데 있다고 본다.
서류가 가지는 의미는 법적인 관계의 성립을 뜻하지만, 이혼이나 재산관리와 같은 영역에 있어 필요한 선긋기에 불과하다. 혼인 신고 여부가 그 전부터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함께 산다' 는 것이 바로 결혼의 알맹이다.
고로 내게 동거란 사실혼 관계, 말 그대로 실질적인 혼인관계이다.
3 ;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동거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후지다.
후진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나, 후진 생각으로 동거를 하는 애들이나 후지기는 매한가지.
'함께 산다' ; 쉽고 의미와 부담은 적다. 이따위 인식을 편리해서 좋다는 찬성이든 그래서 안된다는 반대든 양쪽이 사이좋게 나눠갖고 있는게 문제다. 정말이지 후져서 참을 수가 없다.
혼자 태어나 혼자 가는 삶에 누군가와 함께 살을 맞대고 일상을 공유하기로 작정하는 일을 하룻밤 자기삼기 마냥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결혼의 알맹이만 쏙 빼다가 쿨하고 똑똑하게 '일단 살아보고 결정해야지'를 외치는 애들이나, 그 알맹이인 동거를 그 어떤 별다른 숙고도 없이 천박경박하게 여기는 머리굳은 어른들이나.
방송 3사 및 그 외 셀 수 없는 케이블 방송 기자들을 다 데려다 놓고 요란스레 결혼식은 올려놓고 '법적 부부'는 아니었다며 참으로 편리하게 살림을 접는 골빈당 딴따라들, 그리고 그를 본받아 결혼해도 애 낳기 전까지 혼인신고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참으로 똑똑하게도 딸들을 가르치는 아줌마들이 이 나라의 후진 결혼관, 연애관에 일조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4 ; 세가지 결합
최근에 남녀의 결합에는 총 세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신적 결합
육체적 결합
사회적, 또는 법적 결합
또 무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5 ; ultimate
ultimate : 최종적인, 마지막의, 궁극의
요 몇일 여러 모로 되새기고 있는 단어다.
지극히 개인적인, 바로 '나'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남녀관계에 있어 내가 지향하는 궁극점은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법적) 결합에 온전히 다다른 상태로,
한국 사회에서는 아마도 일반적이고 평화로운 혼인 관계에서만이 구축할 수 있는 틀이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나 틀)
그래서,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읽은 누군가의 청첩장 글귀에서
'저희 두 사람만으로는 부족해 주님께 의지하고 여러분 앞에 약속합니다'* 라는 말이
매우 의미있게 다가왔다.
나는 아마도 주님께 의지할 일은 없겠지만, 종교를 포함해 혼인 당사자들이 몸담고 있는 모든 사회적인 측면을 아울러 결합을 약속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부끄러운 내가 바라고 꿈꾸는 것은 그런 귀하고 아름다우며 온전한 결합이다.
그래서,
나는 동거를 원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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