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from La Table 2008/12/12 21:06

1

'비가오나 눈이오나' 같은 노래를 틀어놓고
따뜻하게 김이서린 부엌에 서서 밥을 짓고
커다란 냄비나 솥에 가득, 국을 끓이거나 카레나 스튜를 만들고 있으면
왠지 나도 괜찮은 여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돼지고기와 야채를 냄비 가득 넣어 젓기도 곤란한 카레
팽이버섯 한봉지를 전부 집어넣은 라볶이
모짜렐라 치즈와 청량 고추를 듬뿍 넣은 펜네 아라비아타
생일엔 미역국 매서운 바람 부는 날엔 무우 국 눈 오는 날엔 떡만두 국


2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달달하고 포근포근했던 리에주 와플을 사서 친구와 나눠먹으며 백화점까지 걸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이제 막 손에 들어온 탐스러운 열매도 버리고 떠날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도,
온 마음을 담은 동감의 표현으로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인 나도,
아직은 사랑 타령으로 얼마든지 휙휙 삶의 핸들을 틀어버릴 수 있는 나이라 좋구나.

그를 만나러 상하이로 날아간다는 그녀가
더 행복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추웠다.
바람을 맞으며 야채와 카레와 탄산 사과주스가 든 봉지를 들고 걸었다.
엘리베이터 벽에 빨개진 볼이 보였다.
그 빨개진 볼로 달려가 보고 싶었다고 보고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2008/12/12 21:06 2008/12/12 21:06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오픈아이디로만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