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대한 관심은 한 장의 판화에서 비롯되었다.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그날그날 일정을 만들어 움직이던 나는 문득 비엔나에서 읽은 어느 칼럼 내용을 떠올리고 케테 콜비츠 미술관에 들리기로 결심했다. 나란히 자리한 베를린 문학의 집 내 ‘겨울정원Wintergarten’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들린 그 미술관은 그 누구와 마찬가지로 나를 맞이해 샘물을 퍼주듯 소탈한 손길로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흥이라는 단어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종의 따뜻한 깨우침에 나는 부끄러운 눈물을 흘렸다. 그 가운데 위의 판화 ‘씨앗에 쓸 밀은 빻아서는 안된다 Saatfrüchte sollen nicht vermahlen werden’가 있었다. ‘Seed Corn Must Not Be Ground’라는 영문 제목을 메모해두었다가 찾아보니 괴테의 작품에서 발췌된 문장이었다. 귀국하면 곧 찾아 읽기로 결심했다. 내게 그토록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한 후에, 콜비츠는 나를 괴테에게로 이끌어 준 것이다.
독일 문학에 문외한인데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문학사적 의의나 교양소설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줄곧 이 작품을 ‘빌헬름 마이스터의 연애시대’ 정도로 생각했다. 세계문학이라는 범주 안에는 참으로 많은 남성 연애 편력기가 있구나, 즐거워하며 이걸 다 읽으면 오래전에 읽다 만 ‘겐지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지 생각하기도 했다. 시종일관 쉬운 남자 빌헬름의 연애는 릴레이 계주 마냥 계속된다. 그러나 그가 연극에 본격적으로 투신하는 중반부에는 '햄릿' 을 읽고 싶어졌다. 빌헬름이 오합지졸 단원들을 모아놓고 햄릿에 대해 열정 충만한 해석을 늘어놓는 부분에서 기억 저편 학부시절 문학의 언저리에서 맛보았던 즐거움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얇게 잘라 만든 스티커를 붙여가며 후반부를 읽는 동안에는 괴테를 비단 소설가라 칭할 수 없는 이유를 알 듯 했다. 초중반부 부터 빌헬름이나 그 외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들려주는 인간 군상에 대한 괴테의 성찰에서는 이미 재주 있는 이야기꾼, 재능있는 작가의 경지를 넘어선 현인의 면모가 엿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괴테의 장기자랑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 막바지에 이르면 등장인물들의 과거사와 출생의 비밀이 숨막힐듯 전개되어 막장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말초자극이 연타로 찾아오니, 무려 4세기동안 책을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흥행력에 탄복할 따름이다. 아, 하나 잘하는 놈 다 잘한다더니, 미남인데다 머리 비상하고 능력 있고 풍류도 알면서 명까지 긴 이 말도 안 되는 남자는 왜 18세기에 태어난 것인가. 아니 도민준도 사백 살이라면서, 어딘가에서 천송이 같은 여자와 여전히 연애 중이신가. 그런 건가 괴테도.
그런 생각들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장을 덮고 보니 다음으로 무엇을 읽어야 할지 영 모르겠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다만 파고 또 파도 공부할 거리가 나오는 이런 바이블 같은 작품은 일자무식 문외한도 밀쳐내는 법 없이 무언가 하나쯤은 들려 내보내는 법이니, 마지막으로 얻어 걸린 키워드는 ‘교양소설’이다. 독일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소설 유형으로 개인의 자아형성과 사회 통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소설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는데, 그중에서도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교양소설의 본보기라니 나 이런 책 읽었노라 뽐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 외에도 비루한 힙스터들마저 끌어안는 넓은 가슴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유리알 유희’ 역시 교양소설의 대표작에 속하나니 바야흐로 나 빼고 모두가 읽었다는 헤세에 손을 댈 때가 오고야 말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책 밖 일상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얼마 전부터 몹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하나 얻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삼년은 관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며 랄라랄라 다니는 중인데 최근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남성 갱년기 증상으로 동료들을 들들 볶아 행복한 나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도 없다 불똥을 맞고 보니 발걸음도 가볍던 출근길이 순식간에 보통 출근길이 되어버렸다. 본래 우울이란 게 몇 방울이라도 한 번 물이 들면 사실은 그렇지도 않건만 빨아서 아무리 야무지게 짜내도 영영 깨끗하게 빠지지 않을 것만 같다. 무언가 그런 분위기가 이어져 영 심기가 불편하던 어느 날 퇴근길에 읽은 괴테의 일생과 파우스트에 대한 칼럼은 그런 내 감정의 얼룩을 한방에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천재의 빼어난 일생과 빼어난 업적은 범재를 좌절하게만 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햇볕과도 같다. 그런 절대 우위의 본보기가 어슴푸레한 속을 침울하게 더듬는 범인의 마음을 밝혀주기도 하는 것이다. 볕은 만인의 머리 위를 비추고 머리카락 사이의 곰팡이를 털어주며 비타민 D도 보충해준다. 고전은 그런 존재이기에 의지해 살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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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깨알같은 유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기쁘오 ㅋㅋ 통화하자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