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DI
OPERA BASTILLE
le 27 jan 2012
바스티유에서 본 첫 오페라. 들어서는것 만으로도 순진한 마드모아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르니에의 화려함에 비해 1989년에 문을 연 현대식 극장 오페라 바스티유의 첫 인상은 조금 심심했다. 그러나 어지간한 티켓으로는 꼭 무대 어느 한 구석이 가려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가르니에와는 달리, 바스티유는 어지간한 티켓이면 시야에 무대가 다 들어오게끔 설계되어 가난한 학생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무려 '바스티유'에 설립된 극장다웠다. 브라보.
리골레토는 전 세계 곳곳에서 꾸준히 상연되는 인기 레퍼토리인데다가, 유명하다 못해 멜로디만 생각하면 식상함까지 느껴질 지경인 아리아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을 비롯해 질다역을 맡은 적이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덕분에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아리아가 여럿인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의 희곡 'Le roi s'amuse (환락의 왕)'를 바탕으로 하는 비극이고, 먼저 찾아봤던 영상물이나 공연들도 주로 그런 비극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살린 연출이 많았는데, 파리 오페라는 그보다는 클래식하며 (아쉽게도) 선을 넘지 않는 점잖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여인들의 드레스가 스르륵 흘러 내리는 장면이나 붉은 쿠션이 층층이 쌓인 농염한 침대 신은 없었지만, 바리톤 제리코 루치치Zeljko Lucic는 '리골레토'의 리골레토에게 관객이 거는 기대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며 모두를 감동시켰다. 오페라 가수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놀라고, 나중에는 편안하게 그의 노래를 들었는데, 공연 후에 찾아보니 이미 수차례 리골레토로 분했고 '우리 시대 최고의 리골레토'라는 찬사를 듣는 양반이었다. 역시, 고수는 무지몽매한 이의 눈과 귀에도 뭔가 다르다. 우리의 질다 역은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가 맡았는데, 안정적인 - 질다의 'Caro nome(그리운 그 이름)'를 듣고 있으면, 늘 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주, 그 곡을 부르며 관객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소프라노는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 노래와 연기에 젊고 아름다운 자태가 인상적이었다. 리골레토와 질다에 비해 표트르 베찰라의 만토바 공작에게서는 큰 감흥을 얻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역시 그가 부르는 'La donna e mobile'을 들으며 그 멜로디가 식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샴페인을 한 잔 마실까 하고 바에 갔다가 한 무슈가 하겐다즈 바를 먹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아이스크림을 샀다. 하겐다즈 마카다미아 넛 브리틀Macadamia Nut Brittle 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아이스크림 속에 캐러멜 토피가 묻은 마카다미아 조각이 들어있어 끈적끈적하고 맛있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