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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 LND (2) 2013/03/10
  2. La Buveuse d’Absinthe (2) 2013/03/02
  3. Vin chaud 2013/03/01
  4. L'Anneau du Nibelung - L'Or du Rhin 2013/02/10
  5. Edward HOPPER in Grand Palais (2) 2013/02/06
  6. 하루키 잡문집을 읽다가 2012/09/29
  7. 일상 조금 2012/09/24
  8. MANON 2012/02/16
  9. ORPHÉE ET EURYDICE (2) 2012/02/16
  10. LA DAME DE PIQUE 2012/02/16

2013 LND

from Bon voyage! 2013/03/10 08:59


2013 03 04 - 2013 03 08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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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 wok / L'Eau à la bouche/Dishoom
The Wolseley/Claridge's
Ottolenghi/The Orangery/Tom Aikens/Flat White
Monmouth coffee/The Refinery
St. John bread&wine /Peyton and Byrne

Harrod's/Fortnum & Mason/Borough Market/Whole food/Daylesford Organic/Selfridge's/Mark's&Spencer

Tate Britain - Retrospective Schwitters
Saatchi - Gaiety is the most outstanding feature of Soviet Union
Tate modern- Restospective Liechtenstein, A bigger 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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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기쁘게 만들었던, 북역 전광판에 떠 있던 St. Pancras international. 고마웠던 마중. 브릭 레인에서 브로드웨이 마켓까지 긴 산책, L'eau à la bouche와 첫 플랏 화이트. 치즈하면 프랑스인가요, 앙드루에 프로마주리. 차이만큼은 맛있었던 Dishoom. 담배 연기.
 
여전히 멋진 남자들이 미팅을 하고 아침을 먹던 The Wolseley. 슈비터스와의 첫 만남 그리고 영국 회화, 테이트 브리튼. 클라리지스의 일등 스콘과 백점짜리 마리아주를 보여준 마르코폴로 젤리. 포트넘 앤 메이슨, 내 평생의 밀크티. 좋아하는 서점 Hatchard's. 작년에도, 올해도 별로 달갑지는 않았던 옥스포드 스트릿 혼자 걷기. 떠들썩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외로웠던 밤.

깔끔한 마감과 디스플레이를 자랑하던 오또렝기. 평온해 아름다웠던 아침 나절 켄징턴 가든, The Orangerie. 편안하고도 즐거웠던 대화. 항상 길을 잃게 되는 사우스 켄징턴 역 앞. 괜찮았던 서비스, 그러나 기대에는 못미쳤던 식사 그래서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았던 Tom Aikens. 런던에는 Sushi des artistes 라는, 희한한 이름의 스시집이 있더군요. 사랑했던,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사치. 흠뻑 좋았던 전시. 아, 사치, 사치, 오오 사치. 오일머니 아로마 진동하는 나이트브릿지와 해로즈. 그럼에도 모두를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만드는 마술같은 푸드홀. 아스파라거스에 시소 잎까지 얹은 남다른 나시고랭. 늦게 찾아간 소호에서 마신 두 번째 플랏 화이트.

좋은 날씨 땡,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찾아간 보로우 몬머스, 전 직원이 패셔너블한 그 곳. 이번엔 필터커피. 섬세한 맛은 없던, 그러나 그 나름대로 좋았던 커피 한 잔. 생각보다 투어리스틱했던 보로우 마켓. 비싸던 프랑스 토끼와 덜 비싸던 영국 토끼. 뜨거운 허니 레몬 진저, 크로아티아 무화과 케이크, 역시 프랑스 치즈, 루쿰 사탕, 포르투갈 나따 그리고 허니 콤브. 사년 만의, 들어가는 순간 너무 반가워 숨이 탁 막히던 테이트 모던. 다시 만난 세계, 리히텐 슈타인 회고전. 흥미로웠던 기획, A bigger splash. 흐린 날씨, 유리 창밖으로 보이던 템즈강과 생 폴 성당. 런던에서 다시 만난 홀푸드 땅콩버터 머신. 없는 허니로스티드피넛 대신 아쉬운대로 솔티드 피넛. 노팅힐 밤 산책, 데일스포드 오가닉.

St. John의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 런던에선 잊지 않는 시나본 시나몬 롤 한 박스. 마지막 날은 갤러리 대신 백화점 셀프릿지스. 한국 백화점가와 별 반 다를 바 없는 값에 사들인, 그래도 예뻐 좋은 첫 로열 앨버트. 다음에는 꼭 티세트를. 로컬 구르망들을 위한 실용적인 구성의 셀프릿지스 푸드 홀. 그곳에서 나를 실소하게 한 트러플 가격표. 가던 발길을 붙잡던 장미 향. 무거웠던 캐리어. 비와 교통체증. 케이크가 아기자기 페이튼 앤 바이른. 훅 반한 엘더플라워 앤 진저 티. 드디어 찾은 밀리어네어스 쇼트 브레드. 또 한 번의 반가운 대화, 고마웠던 따뜻했던 배웅. 그리고 다시 나는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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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여섯 상자, 네 깡통.
전시도록 다섯 권, 카툰 북 한 권, 읽고 싶은 대로 골라담은 아홉 권 도합 열 다섯 권.
초콜릿 두 상자, 한 판.
터키쉬 커피 한 깡통, 한 갑.
유기농 설탕 백 오십 그람.
과일 잼 큰 한 병 작은 두 병.
시나본 시나몬 롤 한 박스.
찻 잔 다섯 조.
스코티쉬 퍼지 두 상자.
허니 콤브 한 봉지.
꽃무늬 시장 가방 하나, 면 가방 둘.
커피 한 봉지.
말린 망고 한 봉지.
꽃무늬 우산 하나.
엘더 플라워 앤 구즈베리 향수 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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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키친 원해요


 
2013/03/10 08:59 2013/03/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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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uveuse d’Absinthe

from Tableaux 2013/03/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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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1881-1973)
La Buveuse d’Absinthe, 1901
Huile sur toile - 65,5 x 51 cm
Collection particulière

 
단박에, 훅 반했다.
저 압생트의 초록에.

저 멋진 그림을 오르세에 빌려준 이는 누구일까?

춥고 흐렸던 날
반쯤 닫힌 미술관에서 나를 부른, 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림.  



2013/03/02 09:27 2013/03/02 09:27

Vin chaud

from La Table 2013/03/01 05:57

마시다 남은 꼬뜨 드 뉘Côte de Nuits 반 병에 향신료 몇 가지,
설탕 대신 주인 아주머니에게 얻은 씁쓸한 오렌지orange amer 잼을 넣고 뱅 쇼vin chaud를 끓였다.
살짝 졸아든 맛이 혀 끝에선 묵직하고 뒤로는 달큰하다.
엊그제 길거리에서 산 양 젖 치즈도 조금씩 잘라 먹는다.

좋은 밤이다.




2013/03/01 05:57 2013/03/01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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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Opera National
Das Rheingold / L'Or du Rhin
2013 Opera Bastille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
라인의 황금
2013 오페라 바스티유


작년 가을부터 예매해두고 기다렸던 파리 바그너 링 사이클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라인의 황금'.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시즌이라 세계 각지에서 야심찬 프로젝트들이 예고된 바 있다. 이미 작년 하반기에 개막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링 사이클이 지금까지 공연중이고 릴레이 하듯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그 뒤를 이어 올 상반기 반지 시리즈의 막을 올렸다.

작년 가을, 한참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마침 뉴욕에 들러 메트의 '신들의 황혼'을 구경했더랬다. 반지 시리즈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긴 했지만 일정상 전 시리즈를 다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있는대로 끊은 티켓이었다. 영화 뺨치는 무대장치와 과감한 스케일로 유명한 메트의 링사이클인지라 한 작품이라도 직접 본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그렇지만 바그너조차도 미국적이랄까, 영화의 영향인걸까. 미제 인터프리테이션이니 미국냄새가 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처음에는 눈을 확 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반지의 제왕이나 (아주 좋아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스타워즈 같은 판타지, 혹은 사이언스 픽션 필름의 냄새. '마농'을 보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메트의 기획력이나 연출력은 객관적으로 훌륭하지만, 그 스타일이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느냐면 아니랄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종일관 씩씩하게 노래하는 브룬힐데에게서는 매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기대했다. 파리의 반지시리즈를.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이 최고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지만, 조건상 자주 드나들며 크고 작은 재미를 느낄 기회가 많았다. 각 작품과 작곡가의 정통성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혁신을 이어가는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단들의 연출에 비하면 파리 오페라는 장르 자체의 클래식함은 유지하되 더 과감하고 독창적인 신을 보여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이 오리지널리티로, 아방가르드로, 세련된 미니멀리즘으로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저 싫기도 했다.

하지만 두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내가 실망하고 있음을 느꼈다. 가수들은 전반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고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기대했던 것 보다 심심했지만 나쁜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것은 무대 연출이었다. 사람마다 제각기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무대는 딱히 모던하다고도 독창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이 애매했고 몇몇 의상은 흉하다 싶은 수준이었다. 사람마다 '라인의 황금'에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오페라는 시청각예술이다. 시각적인 감흥을 줄 수 없다면 반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쩐지 나는 파리 오페라의 '라인의 황금'이 무성의하다고 여겨졌다.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그너의 '니벨룽겐의반지' 연작은 오페라 네 편이 함께 가는 대작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주로 네 작품을 순차적으로 모두 관람하며 - 오페라 네 편의 티켓을 함께 구입한다는 뜻이다. -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은 만큼 음악적 애정 이상으로 지적인 관심을 쏟는다. 때문에 세계 유수의 오페라 하우스들이 반지 시리즈의 연출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 것이다. 링 사이클은 무조건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시켜야 할 관객의 기대가 큰 만큼 어떤 스타일이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완성도가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나의 실망은 그런 측면에서 가졌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던 탓이었다.

아마도 그날의 실망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것 같다. 이날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박수소리에서는 으레 섞여있기 마련인 흥분섞인 탄성이나 찬사의 목소리가 거의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02/10 03:02 2013/02/10 03:02

Edward HOPPER in Grand Palais

from Tableaux 2013/02/0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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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hawks, 1942

그랑팔레에서 열렸던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가 끝났다. 78만 4269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전시 마지막 날, 관람객들은 전시 입구쪽  정원 한켠을 가득 메우고도 바깥까지 길게 줄을 섰다.
전시를 위해 한 데 모였던 그림들이 미국으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것이 아쉬웠던 나도 잠시 들러 좋았던 그림들에 인사를 했다. 잘 가, 언젠가 또 만나.

흠모했던 교수같은 얼굴의 호퍼에게 감사했다. 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들,  더운 여름날 도시의 미지근한 바람처럼 똑똑히 겪었으나 뚜렷이 떠오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아련한 순간들, 그 빛을, 공기를, 그렇게 남겨주었음에.
 
이번 전시 도록의 영문판은 매진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면 도록도 다음 쇄를 찍나, 잠깐 궁금했다. 여튼 놀랐다. 45유로나 하는 도록이 매진이라니. 물론 나는 영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불어판을 샀다.

계산을 하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데 아이 둘을 데려온 젊은 아버지가 내게 먼저 계산하라며 순서를 바꿔주었다. 바로 내 뒤로 아이들이 그림이 그려진 마그넷을 들고 뛰어왔는데, 여자아이가 "Papa, je l'a trouvé!"하자, 아빠는  "je l'ai trouvé" 라고 고쳐주었다. 여기 아이들도, 그렇게 배우는 불어인가보다. 조동사를 틀려가면서, 동사 변형을 외워가면서. 그 모습이 좋아보였다. 나도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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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 Suey 1929

이월 한 달 동안은 이 그림을 본다.  

2013/02/06 03:16 2013/02/06 03:16

하루키의 에세이는 좋아한다.
요즘 그의 "잡문집"을 읽고 있는데,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적어둔다.

...
 나에게 음악이 가진 최대의 훌륭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차이도 알고 중간 정도 차이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미묘한 작은 차이도 식별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은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이라는 뜻이니 그저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인생의 질이라고 할 만한 것까지 크게 달라지게 만드니까요. 끊임없는 가치판단의 축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그림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음악입니다. 그런 만큼 정말로 좋은 음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가지 듭니다.

-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잡문집>/무라카미 하루키

공교롭게도, 아쉽게도, 이 부분의 번역이 매끄럽다고 보긴 힘들지만, 메세지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그의 에세이가 좋은 건, 나 역시 저 '가치판단의 축적'을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인가보다.
나름의 가치판단 대상을 가졌다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2012/09/29 06:11 2012/09/29 06:11

일상 조금

from Tous Les Jours 2012/09/24 05:17
-
오전 한시 사십 삼분
그런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나는 여전히 파리를 모른다.  

-
푸아그라 한 캔이 절실했던 일요일

-
잘 익은 복숭아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역시 좋은, 고전적인 조합.
심플 피치 멜바

-
밤이면 쏟아지는 비
올 해는 가을이 빠르다.

-
감기에 걸렸다.
2012/09/24 05:17 2012/09/24 05:17

MANON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3:46
MANON
/MASSENET
OPÉRA BASTILLE
le 13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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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있으니 이왕이면 프랑스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봐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때, 이미 '마농'의 티켓은 수 주 전에 오픈되어 100 유로 이하의 좌석은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를 예매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아쉬움도 잊어가던 어느 저녁, 번역 숙제가 싫어 책상 앞에서 몸을 비비 꼬고 앉아있는 내게 오페라 파리가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오늘 밤 마농 퍼스트 카테고리 Category 1 좌석 30유로에 줄테니 오라고. 1분 쯤 고민했던것 같다. 그러나 보고싶던 오페라를 좋은 자리에서 보며 숙제까지 내팽개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내가 아니다. 바로 줄거리 출력해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바스티유로 향했다.

이번 마농은 오페라 나시오날 파리가 새롭게 연출해 올린 새 버전, 소위 '신상'으로 무대 곳곳에서 참신하고자 공을 들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압권은 가수들의 의상으로, 마농의 사촌오빠 레스코가 정말 위 그림 우측 빨간 삐죽 머리를 그대로 하고 나와 노래를 부른다. 빨강과 검정이 얼룩덜룩한 머리를 말미잘처럼 세우고 금속 장식을 찰그랑 찰그랑 달고나와 노래하는 바리톤이라니. 여기에 남성 성악가다운 실팍한 체격이 더해져 현실적인 퇴폐까지 묻어난다. 후에 찾아보니, 이미 여러 오페라단이 '모던한' 마농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클래식에 가까우면 클래식, 모던에 가까우면 모던으로 대부분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듯 했는데, 오페라 파리는 17세기 귀족풍 흰 가발 쓴 아저씨부터 갱스터 룩까지 등장시켜 마치 마스네의 시대와 2012년이 혼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여기에 고전적인 한편 장식적이고 화려한 마스네의 음악이 묘한 대비와 조화를 완성해 신scène 전체가 마치 '이것이 마농의 21세기적 인터프리테이션 interpretation이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마농 역은 마리안느 피셋Marianne Fiset이라는 작고 예쁘장한 소프라노가 맡았는데 어떤 매력이나 심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역할에 잘 어울렸고 젊은 용모에 비해 노래를 잘 했다. 반대로 상대역인 데 그리외Des Grieux 역의 장 프랑수아 보라스Jean-François Borras는 무대위에서 역삼각형으로 보일 정도로 어깨가 넓고 체격이 좋아 두 사람이 재미있는 대비를 이루었다. 데 그리외의 테너와 레스코의 바리톤이 무대 전반을 안정적으로 받쳐 주어 마농이 더욱 빛났던 것 같다. 프랑스 오페라이니 당연히 가사는 불어였지만 영화도 다 못알아듣는 비루한 불어로 오페라를 '듣고만 있을 수 는' 없다. 역시 무대 위 전광판에 가사가 제공되었는데, 프랑스 청중들과 불어 공연에 불어 자막을 올려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세시간이 조금 못되는 긴 공연이라 인터미션이 두 번이었는데, 매번 내 오른쪽 앞자리에 앉은 캐나다 마담이 내 오른쪽 뒷자리에 앉은 미국 마담에게 하는 이야기가 거슬려 공연과는 상관없이 한숨이 나왔다. 듣자니 이 캐나다 마담의 딸이 오늘의 주역 마농과 같은 음악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공연을 보러 온 모양이었는데, 소프라노가 캐나다 액센트가 있다는 둥, 아리아의 마지막 고음을 부르지 않아 답답했다는 둥 불이 켜지면 이야기를 시작해 다시 불이 꺼질때까지 그런 류의 비꼬기와 뽐내기를 멈추지 않아 피곤했다. 서울에 있을때부터 예체능계 아이를 둔 부모들 가운데 일부의 극성과 치졸함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여기라고 다른게 없다. 내 아이의 동료가 촉망받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은 건 알겠지만, 그 교양있고 싶어 안달난 아줌마들이 그런 감정을 주체 못하고 드러내는 게 매우 흉하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2012/02/16 03:46 2012/02/16 03:46

ORPHÉE ET EURYDICE
/CHRISTOPH W. GLUCK
*OP
ÉRA DANSÉ DE PINA BAUSCH
OPÉRA GARNIER
le 12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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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두시 반의 오페라 가르니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두시간쯤 걸려 대 브런치를 먹고서 가볍게 치장하고 면바지에 얇은 스웨터에 세미 정장 재킷을 입은 남편 손을 잡고 가르니에에 걸어오면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내가 그랬다는게 아니고...)

이번 시즌에 본 공연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다. 다시 태어나면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 날의 댄서들은 마치 나와 다른 종처럼 보였다. 고도로 다듬어지고 훈련된 인간의 육체는 보석보다 아름답다. 게다가 그 움직임이란!

슬프고 강렬한 1막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아름답지 않고 환상적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보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표를 알아봤는데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오페라와 춤이 결합된 형태의 공연이었기 때문에 오르페와 에우리디스를 연기하는 댄서와 가수가 각각 이었는데, 에우리디스를 노래하는 가수가 한국인이었다. 오르페에 조금 밀리는 듯 해도 소리가 곱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방가르드하면서도 아름답고 내용까지 좋은 무대의 일원으로 서 있는 모습이 근사해 보였다.

이날 객석에는 마치 마레지구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사진에서 그대로 오려 온 듯한 남남 커플들이 많았다. 그들은 분명히 늦잠을 자고 일어나 파트너와 함께 근사한 점심식사를 하고 달콤한 기분으로 가르니에에 도착해 이렇게 아름다운 눈요기를 하고 있는거겠지. 생각하니 부러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급기야는 내 마음속에 눈 사람을 만들었다.  



 

2012/02/16 03:43 2012/02/16 03:43

LA DAME DE PIQUE

from Carnet de spectacle 2012/02/16 03:11
LA DAME DE PIQUE
(스페이드의 여왕)
/TCHAIKOVSKI
OPERA BASTILLE
le 6 fev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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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시즌, 파리 오페라 나시오날과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는 러시아를 주제로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선보였다. 한 가지 큰 주제를 정해놓고 한 시즌 동안 관련 행사들을 다양하게 조직하고 체계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파리 문화계를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 많다. 곧 죽어도 주제sujet와 목차plan와 논리logique에 집착하는 교육의 영향인가 싶어 재미있기도 하고, 풍성한 레퍼토리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력이 감탄스럽기도 하다. 유럽 문화의 강점이랄까, 장기를 좀 알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는 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발레 음악에 비해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보고나면 한 곡 쯤은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오게 되는 - 귀에 잘 걸리는 - 아리아 위주의 이탈리아 오페라들과는 퍽 다르다. 서곡의 완성도가 높고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래서인지 선이 굵다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가수들의 노래가 약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오히려 가수의 체력이 염려될 정도로 강렬한, 혹은 비장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 장식과 연출이 굉장히 좋았다. 무대 위 공간을 나누어 다른 시공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야 무대 예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주는 연극적인 분위기와 분열의 이미지가 작품과 잘 어울렸다. 절제된 무대 장식이 주는 심플한 이미지와 톤 다운된 색감이 빚어내는 모던한 분위기도 시각적으로 멋있을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음악과 대비를 이루어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오페라에 어떤 종류의 문학성을 기대할 것은 아니고, 동명인 푸쉬킨의 원작과도 여러모로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작품이 흘러가는 동안 원작이 가진 성향과 끊임없이 조우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표현이 다를 뿐, 주인공의 광기와 나약함,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자니 마치 악보가 텍스트를 대신하고 있는 듯 했다.

돌아오는 길, 오뗄 드 빌Hotel de Ville 메트로 출구를 뛰어 올라가며 역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노름은 정신병이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2012/02/16 03:11 2012/02/16 03:11